김훈의 이야기는 해부학 수업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감각을 꾹꾹 눌러쓰는 그의 이야기에는 추위와 배고픔, 사랑과 이별, 질병의 고통이 저릿하게 담겨 있다. 읽다보면 인간의 몸이 가진 냄새와 감촉뿐만 아니라 내장의 운동까지 경험한다. 에세이를 모아 엮은 <바다의 기별>에서도 해부학 수업은 계속된다.
‘바다의 기별’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체취가 정맥을 타고 흐르고, ‘광야를 달리는 말’에서는 아버지의 몸에 밴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가 하면 김지하 시인이 출감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교도소 앞을 지키던 고 박경리 선생의 모습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발의 냉기가 느껴진다. 김훈의 몸을 향한 애정과 집착은 몸이 아닌 것들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화가 오치균이 손가락으로 그린 작품에서 친밀감을 느끼고, 태어난 곳이 아닌 지금 내 몸이 있는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며, 도심을 질주하는 소방차를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라고 적는다. 인간을 객관화시키는 세상에게 끊임없이 몸의 구체성을 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로운 사색이다. 11편의 에세이와 2편의 강연록, 그가 지금까지 쓴 책의 서문과 수상소감들을 함께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