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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원작 ‘트와일라잇 사가’의 작가 스테파니 메이어
김도훈 2008-12-16

33살 모르몬교 신자, 꿈 내용을 소설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류 뱀파이어 소설가? 정답은 아니어도 현명한 대답은 ‘앤 라이스’였을 것이다. 그건 4년 전 이야기다. 물론 문학적인 가치에 있어서라면 여전히 현답은 앤 라이스다. 하지만 전세계 수천만명의 소녀팬들은 스테파니 메이어라는 이름을 정답으로 내놓을 게 틀림없다. <트와일라잇>(2005), <뉴 문>(2006), <이클립스>(2007), <브레이킹 던>(2008)으로 구성된 ‘트와일라잇 사가’(Twilight Saga)의 저자 말이다. 소녀 취향의 할리퀸 뱀파이어 로맨스가 앤 라이스의 매혹적인 ‘뱀파이어 연대기’를 능가할 리 있느냐고 장르소설 팬들은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트와일라잇 사가’는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 가장 많이 판매되고 가장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는 대중소설이다.

<트와일라잇>(2005)

<뉴 문>(2006)

<이클립스>(2007)

<브레이킹 던>(2008)

한국은 그 유행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지난 몇년간 트와일라잇 사가의 열풍은 북미를 토네이도처럼 휩쓸었다. 2005년 첫 출간된 <트와일라잇>을 시작으로 2008년 출간된 시리즈의 마지막 <브레이킹 던>까지, 트와일라잇 사가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모두 합쳐 143주나 엉덩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가는 곧 37개 언어로 출간됐고 전세계적으로 모두 2500만부를 팔아치웠다. <브레이킹 던>은 370만부의 초판을 발행하는 기록을 세웠고 발간 첫날에만 130만부가 팔려나갔다. 자발적인 인터넷 팬사이트가 하루에도 수십개씩 새로 생겨났다.

사가의 무대이자 주인공 벨라의 고향인 워싱턴주의 소도시 포크스에는 팬들의 성지순례가 이어졌다. 여행사들은 ‘트와일라잇 투어’를 만들었다. 포크스시에서 볼 만한 것이라곤 영화에 등장하는 음산한 해변이나 주인공들이 다니던 고등학교, 에드워드의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 영화에서처럼 끝없이 쏟아지는 비밖에 없다. 그럼에도 밀려드는 여행객들은 포크스시의 1인당 시민소득을 다급히 상승시켰다.

주인공 벨라처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성장한 스테파니 메이어는 서른세살의 (놀랍게도!)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다. 사실상 문학에 대한 어떠한 정식교육도 받지 못한 그녀는 2003년 어느 날 인간 소녀와 뱀파이어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꿈을 꿨다. 메이어는 꿈에서 깨자마자 책상머리에 앉아서 꿈을 소설로 옮기기 시작했고, 3개월 만에 첫 번째 <트와일라잇>을 완성했다. 성공신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녀는 출판사 ‘리틀, 브라운 앤드 컴퍼니’와 3권의 시리즈를 출간하는 75만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다. 아직 2권과 3권은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내 책이 광범위한 대중에게 사랑받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메이어와는 달리, 출판사는 그녀의 소설이 10대 소녀들의 새로운 <해리 포터>가 되리란 것을 예상했던 셈이다.

거대한 팬덤의 형성에도 트와일라잇 사가는 장르문학계로부터 호의적인 평을 끌어낸 적이 별로 없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스테파니 메이어 스스로도 트와일라잇 사가가 뱀파이어 장르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심지어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도 읽어본 적이 없다. “<트와일라잇>을 쓴 직후에 다른 뱀파이어 소설들을 한번 읽으려고 시도해봤다. 그러나 도저히 못하겠더라. 만약 뱀파이어 소설들이 내 책과 너무 비슷하다면 조금 기분이 상할 것이고, 또 너무 내 책과 동떨어져도 기분이 상할 거다. 그런 건 나를 신경증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나는 R등급(18세 미만 보호자 동반 등급) 영화를 전혀 보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로스트 보이스>를 보다가 그만둬버렸다. 너무 으스스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트와일라잇 사가의 정확한 장르는 ‘로맨스 소설’이다. 그녀의 책을 두고 할리퀸 로맨스라고 이야기하는 걸 문학적 폄하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메이어의 소설은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고 있으며, 바로 그 덕분에 명확한 타깃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 사가가 갈구하는 제한적이고도 명확한 타깃층은 믿을 수 없는 미남자와의 첫키스를 꿈꾸는 10대 소녀들과 그 시절의 기억을 재생하고 싶은 그녀의 이모와 엄마들이다. 메이어가 꿈꾸는 것이 새로운 ‘뱀파이어 연대기’가 아니라 (메이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빨강머리 앤>인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메이어는 트와일라잇 사가가 한 소녀의 성장소설로 읽히길 바라고, 그걸 위해 뱀파이어 장르물이 응당 지니고 있을 법한 성적인 요소들을 희석시켰다. 그래서 사가의 주인공들은 모두 착하고 바람직한 아이들이다. “나는 모르몬교 사회에서 자랐다. 내 친구들은 모두 착한 소녀들이었고, 내 남자친구들도 모두 착한 소년들이었다. 나쁜 남자들은 내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세계가 비관론자들로 가득한 건 아니라고 믿는다.”

메이어는 트와일라잇 사가의 번외편으로 <미드나잇 선>이라는 작품을 출간할 예정이었다. 이 작품은 벨라가 아니라 에드워드 컬렌을 1인칭 화자로 내세워 다시쓰는 <트와일라잇>이 될 참이었다. 그러나 첫 12 챕터가 불법적으로 인터넷에 공개되자 메이어는 아예 자신의 웹사이트에 원문을 올려버린 뒤 이야기를 종결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여류작가의 소설로는 아이러니하게도 <트와일라잇>은 종종 여성차별적이라고 비난받아왔다. 이는 로맨틱한 기사 에드워드의 외모와 성적인 매력을 끊임없이 찬양하는 소설 속 벨라의 시선 때문이다. 만약 <미드나잇 선>이 완성됐더라면 우리는 전혀 다른 트와일라잇 사가의 이면을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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