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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극장요금 9000원 정말 안될까요?
강병진 2008-12-09

영화계 위기의식이 다시 불붙인 인상론…정부·관객 눈치 보며 살금살금 논의중

극장요금 인상은 논의만 해도 뉴스다. 지난 11월25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열린 영화산업협력위원회에서도 제작가협회의 요구안 가운데 극장요금을 9천원으로 인상하자는 사안이 포함되자, 그날 포털 사이트에는 “극장요금 9천원 인상 추진”이란 제목의 기사가 연이어 쏟아졌다. 영진위가 마련한 영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연속 포럼의 두 번째 시간으로 지난 12월3일 열린 ‘극장요금 체계 및 수익분배 방식 개선방안’ 토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극장요금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극장요금 인상의 필요성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물론 그에 따른 우려도 언제나 함께 등장했다. 이창무 서울시극장협회 회장을 비롯해 이동호 롯데시네마 이사, 오기민 아이필름 대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처스 대표가 참석한 이날 토론에서 발표된 인상의 필요성과 우려도 그간의 논의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발제에 나선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정헌일 박사는 “영화로 얻을 수 있는 총수익의 80%가 극장매출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볼 때, 단기적으로 산업 전체의 숨통을 열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의 극장요금은 높지 않은 편”이며, “2001년부터 2006년까지의 물가지수 상승률은 15.7%였지만, 극장요금은 3.8%밖에 인상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리하자면, 제작비나 극장관리비용 증가에 따른 수익보전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에서는 극장요금이 인상될 경우의 상황을 공급자와 소비자 측면에서 동시에 파악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정헌일 박사는 ‘영화관 입장권 가격변화와 영화수요 추정’이란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는 극장요금을 미세하게 인상시키더라도 관객수요의 감소폭은 크지 않거나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할 때, 극장요금을 현실화시키면 공급자의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급자와 소비자를 모두 고려할 때도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증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가격 인상폭이 크지 않을 경우로 한정한 해석이다. 또한 이날 토론에서 오기민 대표는 “극장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 30대 관객을 타깃으로 해 좀더 구체적인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극장 관계자들 또한 “참고해볼 만한 의견”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CJ CGV의 이상규 홍보팀장은 “지금은 영화 외에 대체 오락거리가 많은 상황”이라며 “영화라는 게 하나의 표준화된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서로는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담합의혹’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

그렇다면 만약 ‘관객 이탈’의 우려가 사라질 경우, 극장요금 인상의 실현은 가능할까? 그동안 극장이나 제작자들이 극장요금 인상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2006년 7월 영화발전기금을 징수하면서 “극장요금은 인상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과 극장들이 협의하여 요금을 인상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영화 외에 다른 오락거리가 충분한 상황에서 요금인상이 가져올 극장관객의 이탈이었다. 이 밖에 서비스의 품질이 높은 멀티플렉스 등으로 관객이 몰려 단관극장과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란 지적과 극장시설을 이용할 가치를 느끼는 블록버스터영화들에만 관객이 몰릴 것이란 우려도 포함된다.

특히 담합 의혹은 극장쪽에서 크게 우려하는 것 중 하나다. 이날 이창무 서울시극장협회장은 “이 자리에서 요금인상의 필요성은 토론해도 되지만, 얼마를 어떻게 인상하겠다는 이야기는 하면 안된다. 우리가 담합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무 회장의 말에 따르면, 이미 극장들은 담합 의혹에 대해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7년, 극장협회는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3사가 벌인 자체할인행사로 인해 지역극장들이 피해를 입자 협의 끝에 할인행사를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결과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날아온 60억원가량의 범칙금이었다. 이창무 회장은 “극장사업은 동일한 영화를,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서 유통하는 특수한 시장이기 때문에 요금인상이 일괄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 법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묻고 싶다”고 밝혔다.

극장요금 인상의 실현 여부를 결정짓는 또 한 가지 문제는 누가 행동의 주체가 될 것이냐는 점이다. 극장 관계자들은 “누가 먼저 시작하면 따라가는 건 시간문제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업계의 중평은 대규모 멀티플렉스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멀티플렉스와 지역 단관극장의 입장 차이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날 토론에서 이창무 회장은 “이제는 극장요금 인상에 물러설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상태”라고 말했다. 설비투자나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수 없는 지역극장으로서는 극장요금 인상이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관객을 끌어안고 있는 멀티플렉스로서는 갖가지 우려를 감수하고서까지 나서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CGV의 이상규 팀장은 “요금인상은 동의하지만, 관객을 고려해야 한다”며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때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롯데시네마의 임성규 과장은 “멀티플렉스가 주도해야 하는 문제인 건 맞지만 분위기를 좀더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극장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낼 수는 있어도 구체적인 행동까지는 아직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부가판권 시장 회복 등 동반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소비주체인 관객을 설득하는 것이다. 극장요금 인상논의가 뉴스가 될 때마다 네티즌이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은 더이상 예년만큼의 만족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국영화였다. 말하자면 지금의 한국영화를 더 많은 돈을 주고는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제작자들이 잇속만을 챙기려고 요금을 인상시키자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제작자들이 극장요금을 올리지 못하게 만든 주범일 수 있다. 하지만 요금이 오를수록 제작자들도 그에 따른 막중한 강박을 느낀다. 아마 관객의 심리적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또한 오기민 아이필름 대표는 “극장요금 인상과 함께 부가판권시장을 회복시키고, 제작 시스템을 합리화하는 전반적인 노력과 함께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런 노력이 있다 해도 단기간에 변심한 관객을 설득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요금인상은 산업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일 뿐”이라는 오기민 대표의 말처럼 영화인들은 지금 한국영화계에 긴급 수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인 2007년 12월17일에도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안’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극장요금 현실화를 요청했다. 그때 역시 영화인들은 극장요금 인상요구가 단순히 매출 확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어쩌면 지금 한국영화계에 극장요금은 마지막 산소호흡기일지도 모른다.

차등요금제

제작사가 먼저 위험 감수한다면…

극장요금 인상을 둘러싼 여러 가지 난제들 속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해결책은 ‘차등요금제’다. 물론 현재도 일부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차등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단, 이 요금제는 시간대별로 탄력요금을 적용하는 것이다. 평일 조조는 4천원, 오후 11시까지는 7천원, 심야는 6천원으로 책정하며 극장의 프라임 타임대인 주말에는 8천원을 받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차등요금제 외에 영화별로 요금을 달리 받는 방식도 논의된다. 극장요금의 인상역사를 되짚어볼 때, 인상을 주도해 온 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들이었다. 1995년에는 <다이 하드3>가 1인당 관람료를 6천원으로 책정했다. 2000년에는 <미션 임파서블2>가 7천원을 책정하려 했으나, 관객의 반발로 실패한 바 있다. 즉 영화별로 요금을 달리 책정하자는 이야기에는 관객을 서서히 적응시키면서 기준요금을 찾아가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각 영화들에 어떤 기준을 내세워 요금을 책정할 것인가란 문제가 남아 있다. 이창무 서울시극장협회 회장은 “경차와 중형차, 고급세단의 가격이 다르듯 제작비별로 요금을 차등 적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의견에도 반발은 있다. 오기민 아이필름 대표는 “100억원짜리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만족을 10억원짜리 영화가 줄 수도 있다”며 “제작비 규모별 차등적용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제작비별로 요금을 차등적용한다고 해도 그 주체가 누가 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여전히 담합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경필 영진위 위원은 “제작사가 먼저 극장쪽에 자신들이 만든 영화의 요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이 경우에는 담합이 아니다. CGV의 이상규 팀장은 “제작사가 먼저 제시한다면 극장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관객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어떤 제작자가 먼저 위험을 감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