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특정 배우의 연기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리고 그러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전 몇달 전 미니시리즈 <최강칠우>의 첫 2회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이 시리즈는 1, 2회를 같은 날 방영했지요. 그런데 2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인터넷에서는 벌써 에릭의 연기력을 비꼬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그 기사라는 게 인터넷 반응을 실시간으로 정리해 올린 것에 불과했지만요. 그날 방영이 끝나기도 전에 에릭에 대한 평가는 정립되었고 그게 시리즈 끝까지 갔던 겁니다.
제 의견은 어떠냐. 전 당시 에릭의 연기나 캐스팅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봅니다. 캐릭터를 건들건들 현대적으로 연기하긴 했지만 원래 그 시리즈 자체의 분위기가 그랬죠. 게다가 전 에릭이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전 오히려 그 사람이 너무나도 조선시대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19세기나 20세기 초에 조선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에릭처럼 빈궁하게 마른 얼굴을 한 남자들이 가득하지요.
여기에 대한 제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주장은 나름대로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따르고 있고 논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될 거라는 거죠. 그런데도 시리즈 초반에 고정된 미스 캐스팅과 연기 스타일에 대한 비판은 바뀔 줄 몰랐죠.
이같은 논란은 다른 배우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전에 전 송혜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왕과 나>의 구혜선도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에덴의 동쪽>의 이연희의 경우는… 아, 불쌍한 배우 같으니라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연희의 <순정만화> 연기는 <에덴의 동쪽>보다 낫습니다. 이 사람은 텔레비전으로 넘어갈 때마다 심각해져요. 더 꼼꼼하게 관리되고 더 어울리는 대사가 주어지는 영화 장르에서 이연희는 유용한 배우입니다.
구혜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왕과 나>의 악명이 시작된 건 구혜선의 우는 연기를 잡아낸 움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구혜선 움짤’로 검색하면 십중팔구 그 움짤이 뜨지요. 보면 엄청 웃깁니다. 하지만 과연 전 그게 한 배우를 평가하는 데 객관적인 기준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움짤이란 결국 순간 캡처와 특별히 다르지 않지요. 순간 캡처 한장으로 한 사람의 미모를 평가할 수 없듯이, 한 배우의 연기를 평가하려면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봐야 합니다. <왕과 나>처럼 호흡이 긴 드라마는 배우의 적응 기간도 고려해야 하지요. 실제로 구혜선은 중·후반부엔 상대적으로 나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같은 우는 장면이라도 표현이 다르지요. 하지만 그래도 ‘구혜선 움짤’의 힘이 강한 건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팬들이 더 나은 후반 연기를 캡처해 반박용 ‘구혜선 움짤2’를 올려도 오리지널은 그 반박을 능가합니다. 한번 찍힌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린 순간 평가와 움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이는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입니다. 배우가 뒤늦게 항의하거나 변명하면 모양만 나빠질 뿐이죠. 그런 변명을 주변 사람들이 대신 해주어도 마찬가지이고요. 결국 적응하려면 테크닉을 강화하고 전형적인 연기 스타일에 올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뻔한 답변이 아니냐고요? 네, 뻔한 답변입니다. 그리고 정말 재미가 없지요. 모든 텔레비전 배우들이 움짤과 순간 평가를 겁내면서 모두에게 적당히 통하는 한 지점으로 모인다면 얼마나 심심할까요? 시청자가 좀더 여유있게 대처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눈에 보이는 걸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며 불끈하는 유희본능을 억누를 필요도 없는 거겠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게 수렴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테크닉을 한점에 수렴하려 한다고 해도 배우들의 비균질성이 그렇게 쉽게 깨질 수도 없을 것이며 캐스팅 과정이 그렇게 공정하기만 할 수도 없겠죠. 이런 난장판은 여전히 남을 것이며 뒷담화하길 좋아하는 시청자와 배우들의 기싸움 역시 여전할 것입니다. 그건 좋은 것이겠죠. 줏대없는 인터넷 기자들이 받아쓰기 기사로 이를 억지로 부풀리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