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마을의 이발사가 실종된다. 그는 사라지기 전날까지 평소처럼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그저 평범한 동네 주민이었던 이발사의 실종 소식은 눈 깜짝할 사이 마을 전체에 퍼지고, 불안이 전염병처럼 온 마을을 뒤덮는다.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이발사를 더이상 기다리지 않게 될 즈음, 두 번째 실종자가 발생한다.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처녀 귀베르진이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이제 서로를 의심하고 추궁하기 시작한다. 표적으로 몰린 마을 청년은 끝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림자 없는 사람들>을 잠식하는 건 존재에 대한 불안이다. 사람들은 지인들이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의 실존을 확신하지 못한다. 불안은 확장되고 변주된다. 시간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과거와 현재는 뒤섞이며, 사람들은 몇개의 다른 삶을 산다. 그러나 불안에서 비롯된 광란의 축제가 끝난 뒤, 남는 것은 허무함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실종된 이발사가 살던 어지럽고 정신나간 동네와 멀리 떨어진, 어느 황량한 소도시의 이발소를 조명한다. 그제야 비로소 전면에 등장하는 작가는 텅 빈 이발소를 나서며 “몇 천배 영속적인 것의 아련한 잔재”일 뿐인 자신의 존재에 허무함을 느낀다. 읽는 이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호들갑스러운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뒤끝은 씁쓸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