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이기도 한 이상용은 가장 성실한 영화평론가 가운데 하나다. 2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통해 영화와 연을 맺은 이상용 평론가는 오래도록 직업적 영화 글쓰기를 해오며 인문학적 바탕 위에서 텍스트를 꼼꼼히 두번 세번 읽고, 진득한 자기만의 문체로 영화의 안과 밖을 살펴왔다.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은 스스로 ‘묵은지’라 말하는 글들을 거짓말, 웃음, 환상, 시간, 앨프리드 히치콕 등 12개의 키워드로 나눠 헤쳐 모은 첫 번째 개인 영화평론집이다. ‘웃음’에서 우디 앨런의 심오한 위트와 최근의 변화에 대해 말하고, <이터널 선샤인>과 <러브레터>와 <중경삼림>을 이어 ‘시간’과 ‘사랑’의 의미를 되짚으며,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라 말하는 히치콕의 현재적 의미와 영향력을 분석하며 꽤 너른 장르와 세대를 오가며 영화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정연한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꽤 정교한 배치라고나 할까. 다르덴 형제와 구스 반 산트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얘기하며 ‘현대영화 속 얼굴’을 읽고, <스파이더 맨> 시리즈 등을 통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비롯한 영화 속 ‘영웅’의 위치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그의 시선은 그렇게 영화와 영화 사이를 자유로이 오갈 때 윤기가 난다. 읽다보면 책의 다소 거창한 제목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