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색다른 독자엽서입니다. “넘넘 재미있어요. 이 잡지는 10년 100년 1000년이 지나도 계속 나와야 해요. 게다가 만화 000은 넘넘 재미있군요. 다른 만화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궁금해요. 10년, 아니 100년, 아니 1000년 지나도 나와주실 거죠?” 삐뚤삐뚤 연필글씨에, 내용은 횡설수설 아부 일색입니다. 주인공은 여덟살난 제 딸아이였습니다. <씨네21>에 부치려던 건 아닙니다. 집에서 정기구독하는 한 어린이만화잡지에 보내려고 적은 엽서였지요. 워낙 그 잡지의 팬이긴 했지만, 독자사은품을 노린 잔머리가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웃다가 퍼뜩 ‘10년 100년 1000년 뒤에도 나와달라’는 철없는 문장에 꽂혔습니다. 10년, 100년, 1000년이라….
어렸을 적 <소년중앙>이라는 만화잡지에 안달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서점에 나가 최신호를 사다주면 한달 내내 아끼고 아끼면서 읽었습니다. 기대와 설렘 속에 새 잡지를 받아들 때 훅 끼쳐오던 진한 종이냄새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잡지,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그러나 30년을 못 갔습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종이잡지 위기의 시대라고 합니다. 10년, 아니 5년, 아니 1년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한 시사주간지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더군요. “한국의 문화잡지는 왜 늘 망하나.” 또 다른 시사주간지 역시 “럭셔리가 출구일까, 위기의 잡지쟁이들”이라는 특집을 실었습니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던 대중문화매체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찬바람 속에 부음을 전하는 현실을 진단한 기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2년도 안된 한 장르문학 전문 월간지는 최근 휴간을 했고, TV비평으로 이름이 알려졌던 한 웹진은 휴간 끝에 다른 오너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씨네21>이 속한 시장에서 들려오는 소문도 흉흉합니다. 각종 경제지표들이 추락하는 와중에 “내년엔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경고벨이 삑삑 울려댑니다.
사실 영화 관련 잡지시장이 흔들리는 징후는 몇해 전부터 감지됐습니다. 가격인하경쟁은 그 상징적인 풍경입니다. 잡지 한권을 단돈 1천원 한장에도 살 수 있다는 것. 독자의 주머니가 당장은 짭짤할지 모르지만, 잡지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선 가혹한 제살 파먹기입니다. 흔하디흔한 분식집 ‘김밥X국’의 김밥 한줄도 1500원으로 올랐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서글픕니다. 현재 <씨네21>은 9년째 3천원입니다. 3천원으로 무엇을 살 수 있죠?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 대중식당에서의 소주 한병? 최소한 중국집의 짬뽕 한 그릇 가격은 받아야 정당하지 않을까요?
잡지가격 인상을 주장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종잇값이 뛰는 등 시장환경은 우울하지만, 기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더 좋은 잡지를 위해 착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지면개편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입니다. 2009년 1월부터는 조금 달라진 <씨네21>을 보여드릴 계획입니다. 짬뽕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비싼 명품요리에 값하는 잡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지면개편에 아이디어를 보태고 싶은 독자들께선 거침없이 제 이메일(newk21@cine21.com)로 쏘아주시기 바랍니다. 지면에 반영될 경우 ‘대가성 뇌물’은 확실히 챙겨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100년, 1000년 뒤에도 <씨네21>이 나올지는 자신하지 못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