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검계(劍契)란 지금으로 치면 깡패, 조직폭력배라는 뜻이다. 그런데 검계를 보는 시각차가 좀 있다. 민중 저항적 집단으로 기능했다는 주장도 있고 꼭 그렇기보다는 단순 무뢰배에 더 가까웠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대체로 양반네들이 꾸려놓은 사회에 대해 적개심을 가졌다는 정도에는 동의가 이뤄지는 것 같다. 검계는 숙종에서 영조, 다시 (정조 때 잠깐 잠잠하다가) 순조 시기에 득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같은 시기에 조정의 철퇴도 가해졌지만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계보를 만들어간다.
그중에서도 검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표철주(또는 표망동이라고도 한다)라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표철주는 아직 영조가 제위하기 전 세자일 때 그의 호위무사까지 지냈던 인물인데 노론과 소론의 당쟁 싸움 속에서 자리를 물러나게 됐다 한다. 검계로서 그의 젊은 시절 별명은 ‘황금투구’였을 정도로 많은 부를 주물렀으며 당연히 풍류에 관해서도 일인자였다고 전해진다. 이규상이 영조 때 검계 소탕으로 이름을 날린 포도대장 장붕익에 관한 전기 <장대장전>을 쓸 때 실상 그에 관한 이모저모를 알려준 것은 늙은 표철주라 한다. <장대장전>에서 표철주는 젊었을 때에 “용감하고 날래며 인물을 잘 쳤으며, 날마다 기생을 끼고 몇말의 술을 마시는” 자로 묘사된다. 또한 표철주는 거지 협객으로 통하는 광문의 이야기를 쓴 연암 박지원의 <광문자전>에도 나온다. 비교적 실록보다 이런 저런 문집과 야사에 자주 등장하는 독특한 무인이다. 때문에 시각을 틀어 다시 보면 상상의 여지가 많은 역사의 야인이다.
추천인은 누구
이수광 역사소설가·계간 <미스터리> 편집위원.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 사건> <조선여인잔혹사> <나는 조선의 국모다> 등 저술
추천한 이유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실 다 아는 이름이다. 특이한 인물이다. 하지만 검계 표철주에 관한 이야기는 정통 실록보다는 문집에서 더 자주 언급된다. 그 당시 검계를 소탕하는 데 앞장선 포도대장 장붕익과 함께 말이다. 나는 이번에 표철주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면서 18세기 당대의 인물들을 많이 등장시키려고 했다. 조선의 무예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은데 만약 표철주를 주인공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무엇보다 조선 무예의 독특함을 엿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영화로 만든다면
이 방면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많다. 추천자의 말처럼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조선 무예를 전면에 내세우는 정통 액션 장르로 기획된다면 <무사>를 만들었던 김성수 감독을 떠올리게 된다. 또는 액션의 달인 류승완 감독의 조선시대 액션코믹물이어도 좋을 것 같고, <형사 Duelist>를 만든 이명세 감독의 퓨전액션극이 어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뻔한 가정을 벗어나도 괜찮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상한 슈퍼히어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장준환 감독이 표철주를 다룬다면? 그때 표철주는 보나마나 이상해질 것이다. 표철주는 전해지기를 검술에 능수능란한 자라 했지만 실은 싸움 직전 방귀(장준환의 미완성 프로젝트 <방귀맨> 참조)를 뀌어 적을 혼미한 상태로 몰아넣는 비상한 재주를 갖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표철주 역으로는 정통 역사극 내지 액션물일 경우 소지섭이, 비껴난 상상의 이야기일 경우 신하균이 어울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