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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꿈꾸는 소심하고 조용한 남자 <콰이어트맨>
주성철 2008-11-26

크리스천 슬레이터 변신 충격 지수 ★★★★ 총기 소지 권장 지수 ★★★ 직장인 공감 지수 ★★★★

제목 그대로다. 프랭크 A. 카펠로 감독은 “소심하고 조용하던 한 남자가 자신의 동료와 스스로에게 불을 질렀다”는 뉴스를 보고 <콰이어트맨>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회사에서 ‘왕따’ 그 자체인 남자는 차례대로 누구부터 죽여나갈지 늘 리스트만 외고 다닐 뿐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그저 집에서 홀로 금붕어와 대화를 나누며 위안을 얻는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사무실 마스코트, 상사에게 아부하는 놈, 매일 가장 일찍 출근하는 놈 등이 그의 저격 대상이다. 날마다 혼자 점심을 먹으며 회사가 폭발해 무너지길 간절히 기도하는 그는 꽤 공감할 만한 대상이다. 더구나 그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는 바로 크리스천 슬레이터다. <윈드토커>(2002)와 <굿 셰퍼드>(2004) 정도를 제외하자면 일찌감치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로부터 한참 밀려난 그의 마음 역시 그러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샐러리맨 밥 맥코넬(크리스천 슬레이터)은 소심하고 무능력한 남자다. 직장 동료들에게 늘 따돌림을 당하는 그는 매일 회사 서랍 속의 총을 만지작거리며 동료들을 쏘는 위험한 상상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총성이 들려오고 그가 죽이려고 했던 동료들이 실제로 하나둘 죽어나간다. 동료 콜맨이 자기와 똑같은 계획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 그런데 콜맨이 평소 짝사랑하던 회사 내 퀸카 바네사(엘리샤 커스버트)에게도 총을 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콜맨을 자신의 총으로 쏴 죽인다. 그날 이후 밥은 회사는 물론 지역사회에서도 유명인사가 되고 사장 쉘비(윌리엄 H. 머시)는 자가용까지 선물하며 간부급으로 승진시킨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구한 바네사의 병실까지 방문하게 되는데 그녀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자기를 도대체 왜 구한 것이냐며 소리를 지른다. 하반신 마비로 과거의 퀸카 이미지를 완전히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오해를 딛고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답게 세상의 불의와 싸워야 한다”거나 “사회의 병적인 존재들을 제거해야 한다”며 총을 만지작거리고 “여자들이 얻은 평등은 남성이 여성화된 결과다”라며 탄식하는 밥은 영락없이 <폴링다운>(1993)의 ‘강경 우파’ 디펜스(마이클 더글러스)다. 하지만 밥은 총을 지니고는 있으되 세상을 향해 난사할 용기는 없다. 오히려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사랑에 가슴이 설레는 순정파에 가깝다. 프랭크 A. 카펠로는 그 설명할 수 없는 한 남자의 정체성을 회사 내의 폐소공포증과 연결시킨다. 꽉 막힌 조직의 규범과 답답한 공기는 자연스레 한 인간의 본성을 파괴시킨다. 커다란 뿔테 안경과 반대머리의 크리스천 슬레이터의 현재를 보는 기분은 ‘<헤더스>의 미소년은 어디로 갔나?’ 하는 착잡함과 ‘어, 지금도 죽지 않았네’ 하는 신선함 모두를 수반한다. 왕년의 미소년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회사생활하면서 저렇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면 <콰이어트맨>은 의도했던 바를 완수한 셈이다. 그야말로 멋진 캐스팅이다.

tip/ 프랭크 A. 카펠로는 1993년 데뷔했음에도 <콰이어트맨>이 딱 세 번째 영화일 정도로 지나친 과작의 감독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유명해지기 전의 비고 모르텐슨, 러셀 크로와 각각 데뷔작 <아메리칸 야쿠자>(1993), 두 번째 영화 <노 웨이 백>(1995)을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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