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당신. 지만원 선생을 추억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아예 지만원 선생께 드리는 투로 편지를 써보겠습니다.
가끔 선생의 발언이 신문 지면이나 TV 화면을 장식할 때마다 기분이 야릇합니다. 마치 오랜 친구의 얼굴을 대하는 듯한 친근감마저 느껴집니다. 구면이기 때문이겠죠. 엄밀히 말하면 악연이었습니다. 2000년 5월경이었습니다. 저는 선생을 개혁 성향의 국방 전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전에 관한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뭔가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였습니다. 지면관계상 자세히 쓸 수 없으나, 선생에 대한 그 이미지는 저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습니다. 일련의 사건이 있었죠. 한달여쯤 지나서 자초지종을 묻기 위해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은 언성을 높였고 저도 지지 않았습니다. 몇주 뒤 선생은 “기자에게 전화폭력을 당했노라”며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지요.
그로부터 몇 개월 뒤엔 베트남전 관련 토론회에서 같은 토론자로서 선생을 만났습니다. 그날 토론회 분위기가 워낙 살벌했던지라,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눌 기회는 놓쳤습니다. 선생은 2년 뒤 한 강연회에서 저를 포함해 그 토론회에 참석했던 몇몇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단정해 몰아붙였습니다. 이 내용이 일부 인터넷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발언이 어떻게 보도될 가치가 있는지 말입니다.
선생의 컨셉은 ‘어처구니없음’인 것 같습니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 따위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그냥 상식을 무찌르는 ‘어처구니없음’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04년이었습니다. 한 후배기자가 국방정책과 관련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지닌 이들의 의견을 설문으로 받는다며 그 대상자 중에 선생을 포함시켰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렸습니다. 논지에 관계없이 후회할 거라고 말입니다. 그래도 선생의 명성을 의식했는지 후배기자는 기어코 설문을 받았습니다. 물론 워낙 초현실적인(?) 내용 탓에 싣지 못했습니다. 그 후배기자도 선생의 본질을 눈치채는 듯 했습니다.
여배우 문근영을 향한 ‘좌익 여동생’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발언은 스트레이트 기사 거리가 아닙니다. 비난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저 지만원 선생다울 뿐입니다. 정작 문제는, 이런 개그 같은 말장난을 정색하고 보도하는 언론입니다. 선생은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더 자극적으로, 더 독한 말을 적절한 타이밍마다 풀어놓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뉴스메이커로 부각되는 것에 어떤 희열을 느끼는 듯합니다. 혹시 언론노출증? 선생은 흐뭇하실지 모르지만, 기이한 ‘화제만발’로 어린 여배우는 상처를 입습니다.
이번주에 개봉하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재문(박희순)은 자신의 집에 놀러왔다가 실수로 아기를 질식사시킨 친구 예준(장현성)에게 말합니다. “너 오늘 여기 안 온 거다.” 친구 대신 죄를 덮어쓰는, 오싹하고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실례가 되겠지만, 이를 지만원 선생께 대입해봅니다. “당신 오늘 그 말 안 한 거다.” 앞으로는 지만원 선생이 무슨 말을 하든, 수위에 관계없이 언론은 그렇게 반응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오바마를 빨갱이로 몰아도, 그 말 안 한 걸로 쳐야 합니다. 무시해 드리는 게 맞습니다. 한데 언론의 습성이라는 게 참………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