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화감독들이 영화예고편을 연출한 사례는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영화’에 한해서다. 예고편을 만드는 데 국적이 중요한가마는 그만큼 외국영화의 예고편을 찍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여기에 곧 개봉할 외화 <북극의 연인들>의 예고편을 찍은 한국 감독이 있다.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동백꽃> <히치하이킹> 등을 만들어온 독립영화계의 스타 최진성 감독이다. 5년 전 스페인의 훌리오 메뎀 감독의 <북극의 연인들>을 보고 감동을 받은 그는 10년 만의 국내 개봉에 맞춰 예고편과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외국영화의 예고편과 뮤직비디오를 국내 감독이 연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재미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기 전에 관객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현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나. =‘이미지팩토리’(이 영화의 수입사)의 박상백 실장이 지인이다. 평소 그에게 훌리오 메뎀 감독을 좋아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러다가 영화가 수입됐고, 그가 나에게 오마주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훌리오 메뎀 감독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나. = 그는 스페인 감독이지 않나. 평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우나무노의 <안개> 같은 스페인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스페인 문학은 우연과 필연을 오가는 연속성과 긴장을 통해 삶의 중요한 철학과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훌리오 메뎀 감독과 그의 영화도 내게 비슷한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같은 국적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보다 메뎀을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인 만큼 부담감은 없었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다. 하지만 내 손으로 넘어온 이상 메뎀의 영화에서 받은 인상을 재미있게 재구성하려고 했다. 뮤직비디오, 예고편 모두 하루 만에 촬영했는데, 마음 편하게 만들었다.
-예고편은 종이비행기, 비행기, 달리는 장면 등 영화 속 이미지들을 활용했더라. =두 주인공 아나와 오토가 달리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달리다가 어느 순간 극적인 상황으로 한데 모인다. 이게 바로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연속적인 것이 아닌 단절과 비약을 통해 제3의 공간으로 돌입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예고편은 하나의 작품이기 전에 영화홍보라는 목적이 있지 않나. 그 경계 사이에서 연출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어차피 본편 예고편은 따로 공개되니, 관객에게 티저 광고의 느낌만 던져주면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사를 다 제외했고, 이미지 중심으로 보여주었다.
-누구나 이 영화 속 남녀 주인공처럼 애절한 사랑을 꿈꾼다. 본인은 그런 사랑을 해봤나. =(웃음) 음, 잘 모르겠다. 사람의 감정을 언어화할 때, ‘그게 진짜 감정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맞는 것 같다. 사랑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