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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그 회의 못 가 못 가 못 가!
이영진 2008-11-25

한국영화산업협력위에 영진위 강한섭 위원장 끝내 불참… 영화계 노사의 불쾌감 증폭

“영화진흥위원회 문턱이 언제부터 이렇게 높아졌는지 모르겠다.” _한국영화제작가협회 차승재 회장

“영화진흥위원회에는 공문을 보내도 회신이 안 와요!” _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최진욱 위원장

11월18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2층 회의실에선 고성이 터져나왔다. 오후 1시부터 예정됐던 한국영화산업협력위원회(이하 협력위)가 강한섭 영진위 위원장의 불참 통보로 성사조차 되지 못해서다. 회의 참석을 위해 자리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소속 제작자들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 소속 스탭 대표들은 강 위원장의 불참 사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실무진에 항의했다. 그럼에도 강 위원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화 노사 대표들은 이날 세 차례나 협력위 참석을 요구했으나 강 위원장은 “안건에 대한 사전 논의 없이” 협력위 참석은 곤란하다는 뜻을 실무진을 통해 거듭 전했다.

강 위원장의 협력위 ‘보이콧’은 회의 시작 전부터 예상됐다. 영진위는 협력위 개최 예정을 3시간 앞두고 공문을 발송해 노사의 협력위 정관 수정과 주요 안건들이 “협력위 기능을 넘어선 안건으로 사료된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출범한 협력위는 “영화산업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 등에 관한 노동정책”에 관한 사안을 논의하기로 되어 있다. 반면, 노사가 11월17일 영진위에 최종적으로 전달한 공동발의 내용에는 정관 수정을 통해 “노사 합의에 기초한 영화산업정책” 전반으로 논의 대상을 넓히자는 제안이 포함되어 있다.

“회의에 나와 발언하면 되지 않는가”

노사의 입장은 “사이드카가 발동됐을 정도로” 위기를 맞은 영화산업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이른바 “영화계 노사정위”인 협력위를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는 ‘프러포즈’다. 이에 대해 영진위는 협력위가 영화계의 포괄적인 사안을 논의할 수 있는 기구는 아니라며 ‘퇴짜’를 놓고 등돌린 셈이 됐다. 영진위는 △저작권단속사업 지원 △공정경쟁 환경조성 △투자활성화 방안 △공공성을 고려한 투자환경 조성 등 노사가 제안한 안건들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강 위원장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법적 기구도 아닌 곳(협력위)에 가서 영화 정책 전반을 논의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위원장의 이같은 처사에 영화 노사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제협과 영화노조는 11월18일 공동 성명을 통해 영진위가 안건 상정 자체를 문제삼은 안건들은 2007년 12월18일 제3차 협력위에서 “이미 초동으로 논의된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협력위의 출범 배경, 이후 성과들을 “무로 돌리는 처사”라고 비판한 영화 노사는 “영화산업 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영화제작가들과 영화스탭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과연 누구랑 얘기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차승재 제협 회장은 “여기(협력위)가 무슨 정치하는 곳인가. 사적으로가 아니라 영화계의 공적인 논의들을 하자는 것인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영화사 봄 조광희 대표는 “강 위원장은 노사 요구안건이 적절치 않고, 협력위라는 틀 자체가 의미가 없으니 해체하자고 주장할 수 있다. 회의에 나와서 발언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강 위원장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협력위에서 정상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최진욱 영화노조 위원장도 “협력위는 법적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현안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가능한 것 아닌가”라면서 “영진위의 요청을 다 수용해서 어렵게 자리를 만들었는데 갑자기 논의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사요구안이 ‘무엇’을 담고 있기에 영진위는 참석조차 어렵겠다며 ‘까칠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11월17일 공개된 ‘영화산업 노사요구안’에는 그동안 영화계 안팎에서 수십 차례 제기됐던 부율 조정, 극장요금 인상 등의 사안들을 비롯해 2009년 저작권보호활동 예산 5억6천만원이 전액삭감됐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멀티플렉스 및 대형배급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나, 16억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하겠다는 합법 다운로드 포털 시스템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임금체불 사업주의 경우 영진위 제작지원 사업에 제한을 둬야 하는 것 아닌가 등이 들어 있다.

영화진흥공사 시절로 회귀할 것인가

국정감사 직후인 10월27일 영진위는 ‘한국영화산업 활성화 단기대책’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강 위원장은 4기 영진위의 사업들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협력위에 제출한 영화산업 노사요구안이 현재 국회 심의 중인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 및 2009년 영진위 사업계획안에 대한 추가 해명 및 시급한 현안에 대한 지원 요청으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 영화인은 “정관 개정 및 협력위의 기능 확대에 대한 노사의 요구는 정책 결정에 있어 영진위가 영화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면서 “노사요구안을 비판세력들의 ‘월권’ 행위라고 강 위원장이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 및 4기 영진위가 영화계와의 소통 의지 부족은 이번 사태로 인해 또다시 불거질 것이 예상된다. ‘공개적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책임있게’ 사업을 집행하라는 영화계 안팎의 목소리는 더욱 높고,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사업 추진에 있어 반대 의견에 부딪치면 외부에서 사람들을 끌어와 내부에 팀을 만드는 것이 강 위원장 방식이다. 외부에서 자문을 구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내부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영진위가 과거 영화진흥공사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한 영진위 관계자의 말은 안으로든 밖으로든 “좀처럼 귀를 열지 않는” 강 위원장의 업무 스타일을 고스란히 일러준다. 문제는 강 위원장이 ‘스타일’을 고집할수록 “누구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안들은 더욱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는 사실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최진욱 위원장

“11월25쯤 재개… 생중계로 하자”

-협력위가 무산됐다. 영진위의 불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노사요구안은 지난해 협력위 회의에서 논의키로 했던 사안들이다. 이중에는 추후 협력위가 열리면 서명을 하자고 했던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안건의 범주를 문제삼아서 회의 개최를 못하겠다고 하니. 이는 기존 합의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이번 협력위는 영화를 만드는 주체들이 4기 영진위가 새로 꾸려졌으니 ‘열심히 한번 해봅시다’라고 손을 내민 것인데 정관 수정을 문제삼아서 불참하겠다는 강 위원장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다.

-강 위원장은 협력위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사안을 논의할 수 없다고 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외려 가능하다. 민간의 요구를 받아서 검토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나. 노사가 함께 위기 탈출을 위한 모색을 해보자고 제안했는데, 그것을 안된다고 하면 영진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영진위쪽에서는 노사요구안을 하루 전날인 17일 오후에 발송했다는 것도 문제삼고 있다. =17일까지 보내달라고 했던 것은 영진위쪽이다. 우린 약속에 따라 그 시간에 맞춰 안을 보냈다. 그런데 회의 시작 3시간 전에 불참 통보를 받았다. 사실 이런 네거티브한 공방을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우리 입장에선 누가 영진위 위원장이 되든지 현장이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람들이다. 감정이야 상했지만 앞으로도 생산적인 논쟁만 하려고 한다.

-회의 개최에 관한 추가 요청을 할 계획인가. =확정은 안됐지만 11월25일쯤에 열자고 재차 요구할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4기 영진위가 민간위원회라는 취지를 잃지 않고 급변하는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진위는 인터넷 회의 생중계 요구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는데 다시 요청할 것인가. =고집하는 게 아니다.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현장에 있는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 인터넷 생중계를 제안했던 것이다. 영진위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아는 곳이 많지 않다. 세트나 후반작업을 지원하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수위에 대해서 양보할 수도 있겠지만 공개 요구를 무조건 안된다고 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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