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업체 또는 연예기획사가 연예인들과 ‘노예계약’을 맺어왔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11월2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연예기획사 전속계약서의 불공정 조항 적발 시정’ 조치는 이러한 관행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실상 첫 대응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는 iHQ, JYP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올리브나인, 팬텀엔터테인먼트 등 기획사 10곳을 서면으로 실태조사해 10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을 지적, 수정 또는 삭제토록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지적한 불공적 약관은 기획사가 주관하는 홍보활동이나 행사에 연예인이 무료로 출연하게 하는 조항, 연예인의 행선지나 신상문제를 항상 보고하고 기획사의 지휘를 받게 하는 조항, 연예인의 모든 활동을 기획사가 통제하도록 한 조항 등이다. 이를테면 한 매니지먼트사는 ‘갑(기획사)은 계약상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회사로 이관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연예인의 의사가 반영될 수 없도록 한 전형적인 불공정 계약이다.
매니지먼트 업계는 공정위의 이번 발표에 대해 시큰둥한 입장이다. A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우리가 봐도 ‘계약 해지 이후 같은 업종이나 유사 연예활동을 중지해야 한다’는 규정은 무리가 있지만, 신상문제를 통보하도록 하는 조항은 사생활 문제로 CF계약 등에서 일어날 피해를 막자는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또 그는 “이번에 공정위가 지적한 조항 중 상당수는 사문화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대부분의 관계자는 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의 역관계가 크게 바뀌어서 일방적인 관계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B 매니지먼트 대표는 “최소한 배우 매니지먼트에서는 배우가 강자이고 회사는 약자다”라고 말한다. 배우와 계약을 하려면 적게는 2억~3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 이상인 전속금을 들여야 하는데다 밴형 자동차와 유류비도 제공해야 해 적자구조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같은 관행이 우회상장을 통해 큰돈을 벌려 했던 일부 매니지먼트사의 과도한 연예인 확보 경쟁에서 비롯된 것임을 따져보면 연예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지나친 전속계약금이나 과도한 경비부담을 요구하는 연예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업계의 자정노력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얘기. 이와 관련해 정훈탁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회장은 “불공정한 계약관행과 합리적인 수익구조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에 1년여 전부터 표준계약서를 준비해왔다. 공정위가 지적한 내용도 반영해 조만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영화계의 침체와 경제 한파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매니지먼트업계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을 강화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