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의 글을 마주하는 첫 느낌은 막연함이다. 그의 글은 손쉽게 잡히지 않는다. 주변 환경과 인간의 내면이 섬세하고 구체적인 단어로 설명되어 있음에도 그게 그려내는 풍경이 어떤 모습인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클레지오의 소설은 오감을 무력하게 할 정도의 세세한 관찰로 시작하며 그렇게 표현된 단어들은 현실의 영역을 훌쩍 넘어버린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항상 처음이 힘들다.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무시하고 지나쳤던 세계에 눈을 뜨기까지 10여 페이지는 소요된다.
<사막>은 클레지오가 1980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원시사회, 자연과 근원으로의 회귀 본능이 강하게 드러난 후기 작품 중 한편이다. 소설은 사하라 사막에서 살아가는 1910년의 사람들과 사막 변두리 빈민촌에 사는 소녀 랄라의 이야기를 교차로 보여준다. 소녀 랄라는 ‘청색인간’이라 불리는 사막 투사의 후예이기도 한데 그녀는 결혼을 피해 어쩔 수 없이 프랑스 도시로 나간다. 문명이 몰아낸 사막과 그렇게 없어지는 사막이 랄라의 비극에서 그려진다. 자연과 문명의 대립이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지지만 죽음과 생을 제외하곤 모든 게 무의미해 보이는 사막의 풍경과 랄라가 느끼는 바다·곤충·모래에 대한 묘사는 역시 수려하다. 르 클레지오는 2008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