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뒈져버려, 호모 새끼야.” 이 모멸적 대사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에 등장합니다. 고교 시절 진혁(주지훈)이, 사랑을 고백하는 동급생 선우(김재욱)를 치명적으로 모욕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선우는 ‘뒈지지 않고’ 잘 살아남아 진혁이 차린 케이크점에 10년 뒤 나타납니다. 게다가 자신이 ‘마성의 게이’임을 당당하게 자랑합니다. 참으로 밝게 자란 게이입니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그런가요? 사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정말 뒈져버리고 싶은’ 게이들 엄청 많았을 거라 추정됩니다. 친구뿐 아니라 가족들도 ‘호모’를 감싸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정신병원에 감금하면서까지 ‘전향’을 강요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편견의 벽에 머리를 박다 자살을 택한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뒤늦게 이런 이들을 위로라도 해주려는 건지 게이 코드의 영화들이 쏟아집니다. <앤티크>를 포함하여 곧 개봉을 시작하는 <소년, 소년을 만나다>와 <쌍화점>이 그렇습니다. 일찌감치 극장에 걸린 <미인도>도 넓게 보면 그 범주에 넣을 만합니다. 게이영화 르네상스라 표현해도 될까요?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진화된 포용력을 반영하는 현상으로서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는 게 정답일지도 모릅니다.
“문둥이들 다 죽여버려….” 이건 더 모멸적이고 잔인한 대사입니다. 소록도의 한센인 이행심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동백아가씨>에 그런 대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대사가 아닌 헤드라인입니다. 이번호에 실린 <동백아가씨> 기획(66~69쪽)을 접하며, 저는 3년 전 시사주간지를 만들 때 뽑았던 한센인 관련기사의 독한 헤드라인이 생각났던 겁니다. 그것은 20세기 한센인의 징글징글한 역사를 압축하는 한마디였습니다.
1950년 7월엔 빨갱이로 몰려 군인들에게 총맞아 28명이 죽고(경남 함안군 물문마을), 1957년 8월엔 단지 옆동네에 살기 싫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에게 죽창과 몽둥이로 27명이 죽임을 당했던(경남 사천군 비토섬) 그들입니다. 가장 기가 막힌 것은 1992년 8월 경북 칠곡군 지천면 ‘칠곡농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당시 떠들썩했던 이른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의 수사본부가 차려진 대구 달서경찰서에는 심상치 않은 제보가 접수됩니다. “아이들이 칠곡군 나환자촌 건물 지하에 암매장돼 있다”는 거였죠. 한센병 환자들이 아이들을 죽여 약으로 먹었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게 된 겁니다. 이는 심지어 일간지 1면 머리기사로까지 버젓이 실립니다. <동백아가씨>는 그렇게 인간 이하로 대접받으며 소록도에서 77년의 세월을 견딘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극장에서 관람한 이들 대다수가 눈물을 훔치며 나온다는 말이 당연해 보입니다.
원래 한센병 환자들을 소록도 같은 곳에 강제 격리시키는 정책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일제 식민지 때부터 시작된 이 정책은 일본에서도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한센병은 100% 유전되고 쉽게 전염된다는 오해에서 비롯됐습니다. <앤티크>에서처럼 남자끼리 진한 키스를 한다고 에이즈에 걸리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반인이 한센인 이성과 키스를 해도 한센병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밝게 자란 <앤티크>의 게이 선우처럼, 구김살 없는 한센인 청년을 스크린 위에서 만나는 건 어떨까요? 이왕이면 재밌게, 더불어 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