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수에게 있어 하늘에서 내려오는 밧줄은 구원의 동아줄이 아니다. 그는 사형수다. 아버지가 사형수였던 교도관 동혁은 종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종수 앞으로 들어오는 영치금을 모아 피해자의 유가족인 수희에게 전달하는 그는 “우리가 이해해주지 못하면 그냥 모두가 죽는 걸로 끝난다”며 종수를 조금만 더 이해해달라고 한다. 상상마당 ‘이달의 단편’ 9월 우수작인 차현석 감독의 <해와 달>에는 단편답지 않은 묵직함이 있다. 주제도 그렇고 그걸 풀어내는 방식도 그렇다. “극과 극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구원”을 얘기하고 싶었다는 감독은 그래서 ‘사형제도’가 아닌 ‘사형수의 죽음’을 영화로 풀어낸다. <해와 달>이 여타 사형수를 다룬 작품들과 차별되는 지점도 바로 그것이다. 사형수의 과거나 피해자의 고통은 생략되고, 당장 내일 죽음을 맞는 사형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구원을 바라는 내면을 조용히 담아낸다.
교도소 외관 몰래 찍다 덜덜덜
그는 의외로 “사형제도에 찬성한다”고 했다. “살인과 같은 죄를 저지르면 법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적인 문제 이전에 법적인 문제니까. 물론 어떻게 보면 판결에 의한 사형도 일종의 살인일 수 있고, 사형수들은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도 확실히 잘못됐다고 본다. 그렇다고 영화를 통해 사형제 반대 의견을 펼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사형수들도 죽기 전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엔딩장면에 사형제도의 현황과 세계적 추세들에 대한 통계를 자막으로 넣으려 했지만 스탭들과 오래 상의한 끝에 결국 넣지 않기로 결론을 내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재밌는 것은 차 감독이 법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해와 달>을 찍으면서 법을 어길 뻔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교도소 외경 장면을 찍어야 해서 전국에 있는 교도소에 전화를 다 돌렸다. 한곳도 안된다고 하더라. 익산에 있는 교도소 세트장은 하루 촬영에 200만원이라서 엄두를 낼 수도 없었고. 시장실에도 쳐들어가봤지만 안되더라. 그런데 마침 청주교도소 앞에 교원아파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곳에 들어가 몰래 청주교도소 외관을 찍기로 했다. 촬영하는 형이랑 나랑 엄청 떨었다. 결국 네다섯컷을 찍긴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흔들려서 한컷도 건질 수가 없었다.” 촬영 중에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타난 적도 있다. “사형수가 살인을 저지르고 뛰쳐나오는 장면 찍을 때 피가 필요했는데 연출부 스탭이 피를 안 챙긴 거다. 조연출하고 내가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맥가이버 칼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냈다.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피를 쥐어 짜내고 있었는데 불량 학생들이 애들을 때린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며 경찰이 출동했다.”
“내 장점은 편집과 템포, 이야기”
그렇게 <해와 달>은 여러모로 차 감독에게 도박이고 모험이었다.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와는 180도 다른 영화이기도 했다. “교수님들은 내 장점이 편집과 템포, 이야기라고 하신다. 그래서 템포와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영화 말고 다른 무엇을 해보고 싶었다. 롱테이크와 정적인 분위기 연출도 그래서 시도한 거고.” 그럼에도 차 감독은 자괴감에 빠졌다. 소통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들고 교수님이나 친구들을 찾아가면 사람들의 반응은 늘 ‘어렵다’, ‘난해하다’였다. 한마디로 재미없다는 거다.”
자신의 작품을 진지하게 뒤돌아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만 2년.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청주대학교 영화과에 편입했고, 편입생에 대한 편견을 실력으로 깨고 싶어 2년 동안 쉬는 날 한번 없이 작업했다. 장학금을 놓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153명 중 151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며 공부와 담을 쌓았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영화는 집착을 해도 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차 감독은 현재 졸업 뒤 상업영화 현장 경험도 하고 개인 작업도 하고 대학원 준비도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나가고 있다. 자기 앞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운동을 하는 그는 독하게 영화를 마주 대하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데 더이상 발전이 없고 무언가를 찾아낼 수 없다면 그때는 영화를 포기할 생각이다. 하지만 아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평생 노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