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의 또 다른 이름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다. 일제시대 이래 영화인들은 권력에 맞서 싸우며 표현의 영역을 넓혀왔다. 이 지난한 투쟁이 곧 또 하나의 결실을 맺을 전망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최근 밝힌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영비법) 개정안이 현 단계 표현의 자유 문제의 핵심인 ‘제한상영 영화’에 관해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12일 열린 ‘영화 제한상영가 및 비디오 등급분류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영등위는 기존의 ‘제한상영가’ 등급을 폐지하고 19살 미만의 청소년이 관람할 수 없는 ‘등급외 영화’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선보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비디오물의 등급 보류 조항도 폐지되고 ‘등급외 비디오물’ 등급이 신설된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제한상영가 규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7월31일)과 비디오물 등급분류 보류 제도에 대한 위헌 결정(10월30일)에 따른 후속조치이다.
영등위의 개정안이 획기적인 이유는 등급외 영화가 일반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1996년 영화 사전심의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은 이후에도 ‘등급 보류’ 또는 ‘제한상영가’ 영화는 전용관에서만 보여질 수 있도록 규정돼왔다. 현실적으로 전용관이 운영될 수 없는 탓에 이들 영화의 유통은 사실상 막혀 있었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들 영화의 상영 및 유통 제한 조항을 아예 삭제했다. 등급 외 비디오물도 마찬가지다. 다만, 청소년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등급외 영화를 광고할 때 ‘등급외’라는 문구를 홍보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등급외 비디오물에 경고 문구를 명확하게 삽입하도록 규정했다. 그렇다고 포르노영화가 상영되거나 유통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음란물’을 규정하는 형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모순은 존재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18살 이상)와 등급외 영화(19살 이상) 사이의 본질적 차이가 모호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영화평론가 오동진씨가 “등급외 규정을 신설하지 말고 이들 영화에 기존 청소년 관람불가(18살 이상) 등급을 부여하자”고 주장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물론 그 ‘1살’의 애매함이 존재하긴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기관으로 인식돼온 영등위가 전향적인 대안을 만들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는 조광희 영화사 봄 대표의 이야기처럼 영등위의 개정안이 전향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영화인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영비법 개정안은 이날 토론회의 결과를 종합해 조만간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