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영웅에게서 결함투성이 이웃의 얼굴을 보았고, 열차 칸처럼 늘어선 신문 일일 연재만화의 비좁은 네모 칸에 중원을 담았다. “싸운 적은 없고 버티기만 했다”는 본인의 회고대로 그는 치사찬란한 검열의 시대를 몸을 낮추어 통과한 작가였지만 풍자와 반항을 김장독처럼 깊숙이 묻어놓아 후대에 새록새록 발굴의 즐거움을 안겼다. <고우영 이야기>는 한국 대중문화가 배출한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의 한 사람인 고우영 화백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정리한 책이다.
책을 여는 전 <한겨레> 기자 임범의 글은 1994년 진행한 인터뷰를 토대로 화백의 생애를 요약했다. 고우영 만화를 이유불문 필독서로 꼽는 만화연구가 김낙호는 텍스트를 분석했는데 방대한 인물에도 불구하고 개성을 보존한 캐릭터의 외적 형상화를 지적한 대목과 디지털 시대에 고우영 만화가 발휘하는 저력을 평가한 부분이 솔깃하다. 중국 철학을 연구한 이상수는 고우영 만화의 고전 해석을 검토했고 비평가 이명석은 헤밍웨이처럼 자연을 동경하고 잡기에 능했던 화백의 유희적 면모를 회고했다. 1장을 맺는 박인하의 글은 한국 만화사의 흐름 속에 고우영 만화를 자리매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독자에게 애장될 자료는 3장에 묶인 고인의 성품을 드러내는 에세이와 그의 가족과 지인이 들려주는 미소어린 추억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