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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누 리브스] 외계인, 지구를 부탁해
주성철 2008-11-14

<지구가 멈추는 날> 키아누 리브스

키아누 리브스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날아온다. 모두가 그를 의심하고 그 역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매트릭스>의 네오와 <콘스탄틴>의 퇴마사 콘스탄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가 꼭 지구를 구해주리란 것을. <지구가 정지된 날>로부터 무려 60여년, 키아누 리브스는 리메이크작의 선한 외계인 클라투로 찾아온다.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외계인이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거대한 미확인 비행물체가 착지하고, 그 안에서 정체불명의 한 남자 클라투(키아누 리브스)가 나타난다. 외모는 지구인과 똑같고 영어도 구사한다. 그는 수세기 동안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멸하기 위한 거대한 공격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를 비롯한 세계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이러한 공격을 감행하려는지,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다. 하지만 인류를 말살해서 지구를 청소하려던 클라투는 점점 마음이 변한다. 우주생물학자 헬렌(제니퍼 코넬리)의 영향도 받으면서 그는 점차 인간적으로 변하고, 인간적인 시각에서 결정을 내리려 한다.

원작에서 클라투가 잠시 머물던 집의 평범한 주부였던 헬렌은 이번 영화에서 클라투를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업적으로 돕기도 하는 우주생물학자다. 그리고 이라크에서 사망한 전남편의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렇게 세계의 모든 권력이 투입돼 클라투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사이, 지구를 향한 공격은 시작되고 모든 것이 정지되고 사라지기 시작한다. 지구를 구할 사람은 오직 그뿐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또다시 인류를 구해야 하는 고된 임무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고민하는 표정’이라 더더욱 어울린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리메이크 작품이다.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이라는 영어제목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보통 <지구가 정지된 날>(1951)이라 표기돼왔던 로버트 와이즈의 고전 SF영화가 원작이다. 원작에서 클라투는 인류에 무분별한 공격과 핵무기 축적을 중단하라고 경고하기 위해, 그리고 전지전능한 로봇족에 질서를 맡기고 우주 연방 모두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지구를 방문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사이 상황은 더 극적으로 변했다. 핵의 위협은 여전한 가운데 환경문제 등 인간의 자기 파괴 본성은 더욱더 심화돼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 현재는 클라투가 경고하고 간섭하고 싶은 일들이 더 늘어난 셈. 원래가 ‘고민하는 표정’인 키아누 리브스는 그래서 더 이 영화에 어울린다.

원작에서 클라투는 고독한 운명을 짊어진 사람이다. 또한 실제 수명은 130살이었지만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얼굴이었고, 엑스레이에 찍힐 정도로 모든 골격과 내장 기관이 인간과 똑같았으며, 총상이 짧은 시간 안에 다 나을 만큼 신비한 초능력을 지닌 캐릭터였다. 키아누 리브스는 언제나 현실로부터 유리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빛났다. 그러다 이제 심지어 외계인 캐릭터까지 이른 것이다. ‘인간과 똑같은 얼굴을 한 외계인’으로 키아누 리브스를 떠올린 것은 너무나 절묘한 캐스팅이다. 실제로 원작의 클라투는 함께 지구에 떨어진 로봇 ‘고트’와 달리 별다른 액션도 없었고 오직 진지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헬렌의 아들과 함께 워싱턴의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알링턴국립묘지도 방문했고 링컨기념관을 찾아서는 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감동해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그래서 예정된 개봉일보다 밀려 버락 오바마 후보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개봉하게 되는 <지구가 멈추는 날>의 새로운 클라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더불어 키아누 리브스가 우리 시대의 클라투를 어떻게 재해석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물론 링컨은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출신이긴 했지만 말이다.

네오·콘스탄틴, 그리고 제임스 본드

<헬레이저, 인페르노>(2000)와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2005)를 연출한 적 있는 스콧 데릭슨 감독은 “어떻게 다른 배우를 떠올릴 수 있겠나?”라는 말로 키아누 리브스가 적역임을 강조했다. 키아누 리브스가 <지구가 멈추는 날>에 끌렸던 것도 비슷한 이유다. “난 리메이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콧 데릭슨을 만나 그의 집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종말 위기에 처한 지구’라는 주제에 끌렸다”는 게 그의 얘기다. <매트릭스> 시리즈(1999∼2003)에서 인류의 구원자 ‘네오’, <콘스탄틴>(2005)에서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넘나들며 악의 세력이 점령한 어둠의 세계를 구원하려 애쓰는 퇴마사 ‘콘스탄틴’의 모습은 <지구가 멈추는 날>의 클라투와 같은 옷을 입은 것처럼 묘하게 겹친다. 실제로 원작의 클라투는 우주선을 나오고부터는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워싱턴 시내를 다녔는데, <매트릭스>에서 롱코트를 입은 모습이나 <콘스탄틴>에서 ‘정장 입은 퇴마사’ 콘스탄틴도 그와 멀지 않다.

키아누 리브스는 그렇게 (물론 어딘가 정통적이지 않은)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10년 넘게 활약해온 가장 이단적이고 해석 불가한 영웅이다. 슈퍼히어로 장르가 아니라도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이나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나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처럼 쉴새없이 질주하는 액션영화의 히어로라서 정장이 어울리지 않거나 <스파이더 맨> <아이언맨> <슈퍼맨> <배트맨>처럼 자신의 복장이 따로 존재하거나 하는 경우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늘 정장을 차려입은 (슈퍼)히어로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역설적으로 액션 장르 안에서 그의 스피드는 <스피드>(1994) 이후 계속 느려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미지로만 보자면 차라리 그는 초현실 세계에서 분투하는 제임스 본드라 부르는 게 더 적당할 것이다. 원작에서 클라투는 정장을 입고 ‘카펜터’(목수)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으로 한 가족과 어울려 지낸다. ‘에일리언’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저 멀리,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한 외계인이라는 점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지구가 멈추는 날> 캐스팅만으로도 그가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의 총결산을 선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클라투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지구가 멈추는 날>은 어딘가 특별하고 과도한 액션장면과 특수효과 없이 완성된 원작으로부터 거대한 일탈을 꿈꾼다. 원작의 모호한 결말과 달리 <지구가 멈추는 날>의 인류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과 환경을 파괴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서 결국에는 외계 생명체의 간섭을 초래하게 된 것. 그래서 원작에서 클라투와 함께 지구로 왔던 로봇 고트는 좀더 거대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마치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2007)에서 먼 우주 행성으로부터 날아온 실버서퍼와 닮은 매끈한 ‘액체 터미네이터’ 같은 형태로 등장해 직접적으로 지구를 향해 공격한다. 그 거대하고 위협적인 고트를 조종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클라투뿐이다. 지구를 말끔히 청소하려했던 애초의 목표, 그래도 지구에서 희망을 읽고 지켜야 한다는 뒤늦은 다짐, 클라투는 원작으로부터 무려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과연 어떤 새로운 결정을 내릴까.

<스캐너 다클리>(2006)에서 약물중독에 시달리며 극심한 정신적 혼란에 빠진 첩보요원 프레드를 연기한 것을 떠올려보면 키아누 리브스가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심각한 고뇌에 빠질 모습이 얼핏 그려지기도 한다. 그는 언제나 선택을 강요받는 고뇌하는 남자였고, SF장르 안에서는 늘 지구를 구하는 고독한 영웅이었다. 멈춰버린 지구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을 이는 오직 그밖에 없다. 언제나 그는 ‘더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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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