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와인투어 효과 지수 ★★★☆ 와인 흡수 충동 지수 ★★★★☆ 역사적 사실 엄수 지수 ★★☆
존 스타인벡이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가족의 쓰라린 이야기를 <분노의 포도>라는 제목으로 담아낸 것은 농장주들에게 쫓겨나 비참한 삶을 꾸려나가던 농장 노동자들의 한숨과 아우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줄리아 워드 하우의 <공화국 군가> 또는 요한계시록에서 유래된 이 제목은 포도송이처럼 영글던 캘리포니아 이주 노동자들의 성난 마음을 상징한다. 그로부터 70여년이 흐른 지금, 캘리포니아의 포도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제 포도는 호주 와인 생산량의 2배 이상을 만들어내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핏줄을 뜻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포도의 함의를 문학적 상징에서 경제·사회·문화적 가치로 바꿔낸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파리의 심판’으로 불리는 한 이벤트였다. 1976년 한 영국인이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이 행사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와인보다 질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심사위원 대다수가 프랑스의 저명한 와인 전문가였으니 아무런 인지도가 없던 캘리포니아 와인의 품격이 급상승했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와인 미라클>은 당시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1973년산 샤토 몬텔레나의 탄생 과정을 다루는 영화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역사적 승리를 소재로 삼지만 이 영화는 이 사건을 통해 뻔한 인간승리의 감동이나 작위적인 와인의 철학을 설파하려 하지 않는다. 변호사 일을 때려치우고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농원 샤토 몬텔레나를 차린 짐 바렛(빌 풀먼)의 뚝심과 그의 아들 보(크리스 파인)의 못지않은 열정, 와인기술자 구스타보(프레디 로드리게즈)의 장인정신 등이 묘사되긴 하지만, 어쩌면 그건 농부들의 질박한 마음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관객 모두가 결과를 아는 와인 시음회 장면을 최소화하는 대신 <와인 미라클>은 편안한 호흡의 드라마를 통해 빛나는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서 와인과 함께 서서히 익어가는 삶을 찬양한다. 특히 보와 구스타보, 그리고 여성 인턴 샘(레이첼 테일러)이 펼치는 훈훈한 사랑 이야기야말로 샤르도네 와인의 황금빛을 일궈내는 산소 역할을 한다.
<와인 미라클>은 와인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보는 이에겐 밋밋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겠지만, 화이트 와인처럼 깔끔한 삶의 편린을 맛보고자 하는 이에겐 상쾌한 청량제 구실을 할 것이다.
tip/ 같은 소재의 <와인 미라클>과 <파리의 심판>(아직 제작 못함)이 비슷한 시기에 기획된 것은 왜일까. 그 답은 캘리포니아 와인농장을 여행하는 네 남녀를 그린 <사이드웨이>(2006)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 소식통들은 제작비 1600만달러를 들여 세계적으로 1억달러를 벌어들인 이 영화의 신화가 두 영화를 나란히 출발시켰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