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은 책상에 수북이 쌓여 있는 시나리오 중에서 어떤 작품을 택할까. 시간이 곧 돈인 이들에겐 모든 시나리오를 다 읽을 만큼의 여유가 없다.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그것의 시장가치를 발견해 영화화를 추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의 저자인 마이클 티어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미라맥스에서 스토리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수많은 시나리오를 읽고 선택하고 버린 티어노는 할리우드가 눈여겨보는 시나리오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우연히도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2000년 전에 쓴 <시학>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더란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시학>이란 지적인 텍스트를 할리우드 스타일로 풀어낸 실용서적이다. 솔직히 이 책에 가장 먼저 눈길을 줄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보다는 ‘얘기 되는’ 시나리오에 관심있는 작가 및 영화감독일 것이다. 인용된 <시학> 구절보다 메이저 스튜디오에서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작가의 코멘트 하나가 더 인상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나 <반지의 제왕> <아메리칸 뷰티> 등의 대중영화를 예로 들어 고전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인문서적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 책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번역해 소개한 사람이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한 김윤철 PD라는 사실을 말하면 부연설명이 충분할까.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프로들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