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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 <길>
장영엽 2008-11-05

고생 지수 ★★★★★ CG 지수 ★ 에베레스트산의 변덕 지수 ★★★★★

2007년 4월, 두 그룹의 한국인 원정대가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네팔로 떠난다. 머리가 희끗한 원로 원정대는 30년 전 그들이 이룬 에베레스트 첫 등정(이들은 세계에서 8번째로 정상에 올랐다)을 추억하기 위해, 다부진 체격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박영석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한다는 목적으로 산에 오른다. 그리고 또 한명의 산악인이 이들을 쫓아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20년 등반 경력의 김석우 감독이다. 그는 한국인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하는 기록 영상을 만들기 위해 선후배 원정대를 오가며 산과 사람들의 모습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석우 감독은 한국 산악계의 에이스, 오희준과 이현조 대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든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은 예상 가능한 장면과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로 가득찼다. 바위로 뒤덮인 에베레스트 남서벽의 위용과 몇천 미터 깊이로 입을 쩍 벌린 크레바스, 무거운 짐과 저산소증으로 괴로워하는 박영석 원정대 대원들의 모습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긴장하고 볼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반면 지극히 이성적인 메뉴얼에 따라 산을 오르던 대원들이 집채만한 수박을 등에 이고 캠프에 올라가서 나눠 먹을 때, 이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 유머”가 된다. 산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을 뒤쫓다보니 카메라 또한 산과 사람의 리듬을 따른다. 거친 화면이지만 <>이 CG와 잘 짜인 시나리오로 무장한 웬만한 산악영화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건 그 때문이다.

캠프4 근처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운명을 달리한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죽음은 <>의 편집방향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박영석 원정대는 남서벽 등정을 포기했고, 대원들의 시신을 직접 수습한 김석우 감독은 당시 다큐멘터리 제작 포기를 생각할 만큼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은 처음에 계획했던 ‘77원정대와 07원정대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주제에서 크게 벗어났지만, 대신 삶과 죽음이 한끗 차이일 수 있다는 좀더 큰 내용을 담았다. “8000m를 오른다는 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우는 일이기도, 다리를 놓는 일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만든 이가 산과 사람으로부터 직접 얻은 ‘산 교훈’이다.

tip/이 장면도 감독이 찍었을까? 아슬아슬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을 보노라면 촬영의 주체가 의심스럽다. 사다리를 걸치고 크레바스를 지날 때처럼 위험한 상황을 제외하면 해발 7300m까지의 촬영은 대부분 김석우 감독의 몫이었다. 하지만 전기가 나간 텐트 안에서 그날의 등반을 얘기하던 오희준, 이현조 대원의 마지막 대화장면은 본인들이 직접 촬영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 촬영부문에는 오희준 대원의 이름이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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