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을 내동댕이쳤답니다. 지난 여름, 한 언론사에서 새어나온 이야기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을 적극 지지했던 언론사라는 정도로만 밝히겠습니다. 어느 날, 그곳의 보도 책임자가 말단 기자들에게 밥을 샀다고 합니다. 젊은 후배들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취지였지요. 한 기자가 에둘러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우리가 촛불정국에서 너무 시민들의 미움을 샀다. 공권력만 대변한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선량한 시민 독자들의 지지까지 잃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말이 나오자마자 그 보도 책임자는 찌개를 떠먹던 숟가락을 굉음이 나도록 상에 내동댕이칩니다. 그리고 이런 요지의 일장연설을 퍼부었다지요. “우리가 김대중, 노무현 시절 빨갱이새끼들한테 얼마나 탄압을 받았는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빨갱이 다 때려잡아야 하는 판국에 빨갱이들 지지가 왜 필요한데?”
상징적인 에피소드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을 주창해온 이들의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동안 ‘좌파정부’와 그 떨거지들이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단단한 확신. 이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지난 10년은 깨끗히 청소해야 할 과거로 취급됩니다.
영화판에서도 그렇습니다. 강도야 다르겠지만, 지난 10년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요약하면 “얼치기 진보주의자들이 한국영화계를 농단했고 그 때문에 위기가 도래했다”는 겁니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젊은 좌파들이 다 해쳐먹으면서 영화계를 초토화시켰다”쯤 되겠습니다. 그동안 영화계의 주류에서 소외됐던 분들이 작정을 하고 궐기에 나섰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씨네21>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궁금했습니다. 영화판의 뜨거운 화두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여러 전문가들은 물론 후배 기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대부분 한국영화 최근세사 10년의 평가를 둘러싼 논란을 꼽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강한섭’이라는 인물과 맞물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영화계의 ‘잃어버린 10년’을 설파한 전도사 격이었습니다. 게다가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입니다. ‘강한섭’은 포털 검색순위 1등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와 행보는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거나, 절망적인 폭탄이 될 만했습니다. 특집을 통해 강한섭 위원장의 구상과 발언들을 검증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다시 처음의 숟가락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강한섭 위원장은 숟가락을 내동댕이친 적이 없지만, 그보다 수위가 높은 ‘벌컥’ 버전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그러고 보니 상급단체장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벌컥 욕설’논란으로 곤욕을 치르는 중이군요). 그의 정책을 객관적으로 따지기 전에, 감정적인 반발부터 산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특집기사에서 직언을 한 영화인들도 그가 오만하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모든 게 오해이길 바랍니다. ‘벌컥’이야 급한 성격 탓으로 치부하면 그만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책입니다. 강한섭 위원장의 뜻대로 한국영화의 신세계가 ‘재발명’된다면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더욱 <씨네21>이 제기하는 의문과 비판적 시각을 강한섭 위원장께서 소중하게 포용하시길 기대합니다. 혹시 논리적으로 다툴 게 있다면, 지면도 흔쾌히 내드리겠습니다. 필요하면 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