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데이빗이 바라보는 세상은 잿빛이다. 신은 엄마를 살려달라는 그의 바람을 저버렸고, 어른들은 2차대전을 일으켜 서로 죽고 죽이기 시작했으며, 아빠는 금방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피처로 택했던 독서가 문제가 된다. 마녀와 끔찍한 괴물이 등장하는 환상동화를 즐겨 읽던 데이빗은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의 자신을 ‘습격’하는 것을 느낀다.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책들의 대화를 듣고, 허리 꼬부라진 남자가 서재를 뒤지는 광경을 목격한 직후, 소년은 어둠 속에서 죽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목소리를 따라 정원의 지하로 들어간 그는 전혀 다른 세계를 발견한다.
맷 데이먼과 히스 레저가 주연을 맡은 영화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잃어버린 것들의 책>은 <그림형제…>와 마찬가지로 온갖 미사여구와 화려한 묘사로 포장된 환상동화의 거품을 걷어낸 작품이다. 데이빗이 도착한 세계에서 빨간 망토 소녀는 늑대를 유혹하고, 일곱 난쟁이는 백설공주를 독사과로 살해하려다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소년은 비정한 동화세계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어른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지 판타지물이나 성장소설로 규정하기엔 여운이 너무 길다. 동화적 상징 속에 삶의 진리를 슬쩍슬쩍 끼워넣은 <잃어버린…>은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임을 말한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로 가독성이 높은 책이지만,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공허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