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스타뎀 액션 지수 ★ 사회파 영화 지수 ★★ 실화 재창조 지수 ★★★★
‘런던판 <범죄의 재구성>’이라고나 할까. 너무나 간단명료한 제목의 영화 <뱅크잡>은 은행만 털고 나오려던 일당이 더 큰 사건에 얽히는 이야기다. 1971년 런던, 카 딜러 테리(제이슨 스타뎀)는 옛 애인 마틴(새프런 버로스)으로부터 경보장치가 24시간 동안 해제되는 로이드 은행을 털자고 제안받는다. 마침 사채업자에게 협박당하던 테리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는 포르노 배우 데이브(대니얼 메이스), 사진작가 케빈(스티븐 캠벨 무어), 콘크리트 전문가 밤바스(알키 데이비드), 양복 재단사 가이(제임스 폴크너), 그리고 곧 결혼할 예정인 새 신랑 에디(마이클 집슨)를 불러모은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아마추어 7인의 일당은 13m의 지하 터널을 뚫고 은행에 도착, 수백개의 안전금고에 보관 중이던 돈과 보석을 챙겨 짜릿한 한탕에 성공한다. 그런데 테리는 마틴이 돈에 별 관심이 없고 특정한 사진과 자료를 찾고 있음을 눈치챈다. 얼마 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된 마틴이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특정 사진 자료를 빼내오길 요구받았던 것. 그런데 마틴을 의심한 테리가 도주계획을 변경하면서, 그들은 경찰뿐만 아니라 MI5(영국군사정보국), 그리고 또 다른 범죄조직의 추격까지 받게 된다.
멋진 스페셜리스트들의 향연인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를 떠올릴 것까진 없고, 어딘가 ‘외인구단’처럼 보이는 떼강도 이야기인 <웰컴 투 콜린우드>(2002)나 <레이디킬러>(2004)가 연상될 것이다. 한탕하고서 고향 사이프러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친구, 엄마에게 마당 있는 집을 선물하고 싶다는 친구 등 하나같이 보통 사람들이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쉴새없이 영국식 농담을 주고받는 그들은 곧 어떤 위험이 닥칠지 상상도 하지 못한다. 굴착 도중 발견한 묘비의 연도를 보고는 놀라기는커녕 “웨스트햄(축구클럽)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라고 낄낄대거나 비밀금고에서 ‘우리의 마술 같았던 날 이후 한번도 빨지 않았음’이라 적힌 팬티를 발견하고는 서로의 얼굴에 던져대며 장난치는 식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털이’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범죄 이후 더 큰 사태가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그 안전금고에는 왕실 마가렛 공주의 스캔들 사진도 있고, 부패 경찰의 상납 리스트가 적힌 장부도 있으며, 하원의원의 매음굴 SM 사진도 민망하게 담겨 있다. 특별히 범죄장면이 스타일리시하게 담긴 것도 아니고 제이슨 스타뎀 특유의 박력 넘치는 액션 연기가 펼쳐지지도 않는다(그는 영화에서 딱 한번 싸운다). 영화의 재미는 서로 다른 절박한 이유를 지닌 왕실과 정부와 경찰이 모든 증거자료를 손에 쥔 테리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물론 엄청난 음모론을 제기할 만한 소재이긴 하지만 <뱅크잡>은 철저히 오락영화다. 왕실과 정부를 마음껏 농락하는 ‘쿨’한 재미 말이다. 아직 제이슨 스타뎀에게서 기대하는 건 딱 거기까지다.
tip/<뱅크잡>은 1971년, 런던 로이드 은행에서 발생했던 은행 강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수백 개의 은행 금고가 털렸지만, 100명 이상의 금고 주인들은 분실품 확인을 거부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게다가 MI5에서는 2054년까지 기밀로 분류했을 정도로 언론에는 보도 통제가 내려져 정확한 사건의 전말은 아직까지도 알려진 바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