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을의 정취 지수 ★★★★ 아역배우들의 사투리연기 지수 ★★★★ 해피엔딩 지수 ★
강원도 시골 마을에 할머니와 둘이 사는 11살 소년 상구(김영찬). 이 시골 소년의 삶을 위로해주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었으니, 이들은 한국인 아빠와 단둘이 사는 혼혈아 민희(론다 리 잭트니), 진돗개 병태, 그리고 죽은 아버지가 마을 공동 집하장에 그린 벽화다. 시골 마을에 불어닥친 개발의 열기 속에 아버지의 벽화가 허물어질 위기에 처하고 상구는 아버지가 남긴 8mm 카메라로 벽화를 찍어두기로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은 필름이 망가지자, 상구는 필름을 구하기 위해 진돗개 병태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의 영화학교를 향해 길을 나선다.
산골 마을의 평화롭고 고요한 자연, 부모를 잃고 유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그 사이사이에 비치는 외로움, 여기에 8mm 카메라로 찍힌 지나간 기억의 풍경까지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성장영화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성장기 소년의 눈으로 본 세상과 8mm 카메라 렌즈가 포착한 세상을 겹쳐두면서 거칠고 미숙하지만 따뜻하고 순수한 그때의 시선과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아이들의 동심과 그런 동심에 무심하고 냉정한 어른들의 세계, 시골의 자연과 도시의 문명이라는 대립을 이야기 구조로 삼기 때문에 영화는 때때로 작위적이고 전형적인 성장기의 길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중반부 이후, 소년이 진돗개를 데리고 서울의 시장통과 이태원 밤거리 같은 변두리를 떠도는 지점부터는 투박한 설정임에도 마음을 울리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소년의 눈에 비친 서울은 화려하고 안락한 도시가 아니라 주변부 인생들의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곳이다. 영화는 이 절박한 산골 소년의 마음과 도시의 쓸쓸한 인생들이 소통하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낸다. 소년이 여정의 목적을 이루었든 실패했든 그가 낯선 서울 여행에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혹은 기대와 좌절을 통해 결국은 성장했다고 말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서울에서 소년이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선택과 소년의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끝내버리는 영화의 결말은 단순히 성장통이라고 객관화하기에는 가혹하고 아픈 구석이 있다. 영화는 끝나지만 소년은 이제 착하고 환상적인 8mm영화의 세계에서 꿈꾸는 대신 후회와 죄책감, 원망과 상처로 얼룩진 ‘현실’을 감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tip/상구의 유일한 친구 민희 역을 맡은 론다 리 잭트니는 극중에서 러시아 엄마를 둔 혼혈아다. 론다 리 잭트니는 놀라울 정도로 천연덕스럽게 강원도 사투리를 소화해내는데, 이 소녀는 실제로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부산에 거주하며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