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필모그래피에서 빼는 경우도 있던데, 나로서는 정말 빼고 싶지 않은 영화예요.” 2004년 촬영을 마쳤지만 4년간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 10월16일에야 개봉한 <사과>에 대한 문소리의 애정은 각별하다. 첫 단독 주연작이었다는 점, 시나리오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 영화와 연기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했다는 점 등 문소리가 <사과>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해 보인다. ‘가오’가 생명인 배우가 기자에게 “왜 나를 인터뷰 안 하냐?”고 따졌을 정도면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거다. 사실, <사과>를 보고 있으면 묘한 느낌이 든다. 현재에 가까울수록 시간이 점점 빨리 흐르는 탓인지, 불과 4년 전인데도 영화 속 풍경과 물건들은 아주 오래전 그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사과>를 보며 4년 전의 자신을 추억한 관객이 있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어쩌면 문소리가 <사과>에 그토록 애착을 갖는 이유 또한 4년 전의 자신과 마주하는 반가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문소리는 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에서 남편의 불륜에 ‘맞바람’으로 응수하는 되바라진 며느리로 출연하지만, 사랑과 결혼의 복잡한 함수와 그 불가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 시절을 여전히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지금의 문소리가 4년 전과 달라진 점 또 하나라면, 그건 당시보다도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다.
-요즘 예뻐졌다는 소리 많이 듣지 않나. 얼굴도 작아진 것 같다. =영업비밀을 다 밝혀야 하나. 음, 성형외과는 아니다. (웃음) 사실 몸이 많이 반듯해졌다. 필라테스도 받고 약손 지압이라는 것도 받았다. <오아시스> 이후로 얼굴이 많이 틀어져 있었다. <박하사탕>의 내 얼굴을 보면 반듯한데 <바람난 가족>을 보면 많이 틀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얼굴이 커 보이고, 밸런스가 안 맞았다. 그것을 맞추고 난 뒤에 살이 빠지니까 얼굴에 확 티가 나는 것 같다. 그리고 다들 결혼하고 나서 인상이 부드러워졌다고도 한다.
-결혼생활이 괜찮은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아주 실망스럽지는 않다. (웃음) 생각보다는 괜찮은 사람이더라. 남편(장준환 감독)이 알고보면 반듯한 사람이잖나. 원칙이나 약속을 꼭 지키려고 한다. 살아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다. 그리고 그 사람이 웃기잖나. 웃는 시간이 많아져서 표정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우린 서로에게 해주는 건 없어도 웃겨주긴 해야 한다. (웃음)
-이영진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자청했다. =내 10년 영화인생 중 가장 비굴한 순간이었다. (웃음) 무대인사 다닐 때 그 얘기를 동료들에게 했더니 이선균이 “소리야, 너 영화계의 정 마담 같아” 이러더라. (웃음) 강래연은 “저는 하루를 살아도 소리 언니처럼 살고 싶어요” 이랬다. 사실 관객이 우리 영화에 궁금증을 갖지 않는 건 이해가 된다. 오래된 느낌이 있으니까. 그런데 기자들조차 궁금증을 갖지 않더라. 나는 기자들이 같이 안타까워해줄 줄 알았는데 슬렁 넘어가는 거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이렇게 넘어가시면 서운한 일이잖아요” 그랬더니 이영진 기자도 뜨끔했나 보다.
-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이 영화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애정은 기본이고 마음이 아픈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외면받을 만한 짓을 한 것 같지 않은데. ‘그때 개봉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너무 비실용적이긴 하지만, 그때 개봉한 것과 이렇게 몇년 동안 미뤄져 관심을 아예 못 받는 것은 다르다. 작지만 관심은 받을 수 있는 영화였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야, <괴물>을 만들어봐라, 4년이 지나면 누가 보나’라고. (웃음)
-당시를 떠올리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 같다. =아니다. 영화 만든 이후 개봉을 못하다 보니 김태우, 이선균, 그리고 강이관 감독과 너무 자주 만나서 엊그제 같기도 하다. 참 자주 만났다. 죽었나 싶어서 연락하고, 우울증 아닌가 싶어서 연락하고…. (웃음) 김태우 선배와도 너무 친해져서 전화하면, “여보 어디야? 왜 안 와? … 미안해, 호적을 다른 사람과 올렸어”(웃음) 이렇게 통화한다. 우리끼리는 너무 애틋하다. 애틋해서 짜증이 날 정도다. (웃음) 개봉날 무대인사를 하고 밤에 모였는데, 영화를 본 김태용 감독님 등도 찾아왔다. 그런데 새벽 3시 반에 카페에 둘러앉아서 각자 <사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가장 싫어하는 장면, 이런 걸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다가 끝내 서로 끌어안고 울고, 닦아주고…. 남들이 보면 찌질해 죽겠는데 우리끼리는 사랑을 나누고 애정을 나누고, 이런다. (웃음)
-어떤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했나. =사실 시나리오만 보면 큰 메리트가 안 느껴진다. 혹자는 아침드라마 같다고 하고, 너무 뻔한 이야기이라고도 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특별히 강렬한 캐릭터가 없고. 그래서 배우들도 특별히 매력을 못 느끼는 시나리오였던 것 같다. 그런데 강이관 감독을 만나보니까 너무나도 진지하게 영화 속 이야기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사과>의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시가 아니라면 다시는 못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고민하지 않았다면 캐릭터가 그렇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지금 <사과>를 하라고 하면 못할 거다. 그 관심이 이미 내게서 떠났으니까. 그렇다고 지금 불륜에 관심이 있다는 건 아니다. (웃음)
-당시의 고민이 <사과> 속 현정의 입장과 비슷했던 것인가. =음, 너무 현정이 입장에서만 생각을 해서 오히려 강이관 감독을 힘들게 한 적이 있을 정도다. 사실 그때는 현정의 입장이 감독의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배신감을 느꼈다. 연애하다가 이 사람 마음이 내 마음인 줄 알고 결혼을 했는데 아니잖아, 이렇게 배신감을 느꼈다. <사과>에서 현정-상훈의 관계와 나-강이관 감독의 관계가 똑같았다. (웃음) 하루는 강이관 감독에게 “당신은 현정이 아니라 사실은 민석이랑 상훈이를 대변하고 싶은 거 아닌가. 그런 소심한 마초들을 이해해달라고 하고 싶은 거지?”라고 따진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독의 입장이 꼭 그것만은 아니다. 그 두 남자도 너무나 이해가 가는 인물이라 이 영화가 좋은 건데.
-촬영에 들어가기 전 준비만 8개월 했다던데. =내가 출연 계약을 한 게 2004년 1월인데 8월 말에 촬영에 들어갔으니까. 그 사이에 다른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고민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투자도 안 되고 남자배우 캐스팅도 안 되는데, 하면서. 그러는데 강이관 감독과 박관수 프로듀서의 애절한 눈빛이 생각나더라. 내가 두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고 잘살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도 들고 상도의도 아닌 것 같고 해서 버텼다. 하여간 그 기간 동안 감독, 프로듀서 등과 시나리오 놓고 회의도 하고 리딩 연습도 하고, 술 먹고, 여행도 가고, 남자배우들도 여럿 같이 만났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바꿔나갔다. 그러다 보니 실제 나의 모습도 많이 반영됐다.
-이런 식으로 참여한 영화는 <사과>가 처음이었겠다. =이창동 감독님도 배우의 어떤 면을 반영하시긴 하는데, 내가 모르게 반영하신다. 어느 날 가면 반영이 돼 있는 거다. <오아시스>의 공주가 싫어하는 음식이 콩인데, 그때 내가 콩을 싫어했다. <내가 만일> 같은 노래도 감독님이 ‘공주가 무슨 음악을 좋아할 것 같니’ 물어보셔서 그렇게 답한 건데, 직접 불러야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강이관 감독과는 영화 전체 이야기를 놓고 나를 반영했다. 여차하면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배우로서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나로서는 큰 수업이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도 많은 공부가 됐지만 촬영을 하면서도 배웠다.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들이 촬영에서 반영이 되니까. <사과>는 배우에게 100% 집중해주는 영화다. 조명이고 미술이고 풀세팅을 해놓은 뒤 배우들에게 마음대로 움직이라고 해놓고 핸드헬드로 따라온다. 그리고 신마다 클로즈업이 있다. 그런 데서 자유로워지는 법도 배운 것 같다. 얼마 전 영상원에서 특강을 했다. 이창동 감독님의 연기연출론 수업이었는데, 그날 예를 든 것 중에서도 <사과>가 많았다. 감독과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작업을 해야 하는지를 배운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이후 작업을 할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나름의 룰이 생겼다. 정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르침이었던 것 같다. 배우니까 감독에게 배워야 한다거나 신인감독이니까 배우가 가르친다거나가 아니라 서로 부대끼면서 서로 많이 배운 것 같다.
-얼마 전 <씨네21>에 나온 듀나의 문소리론을 봤나. =봤다. 사실 그걸 보고 갈등했다. 듀나는 내 연기가 하나하나 다 계산적이라고 보는 것 같더라. 그래서 함께 작업했던 분들께도 물어봤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함께했던 임순례 감독님은 전혀 아니라고 하시더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선 운동만 열심히 했지, 연기는 하나도 계산이 없는 거다. <사랑해, 말순씨>에서도 전혀 계산이 없었다. 반면 <여교수의 은밀한 유혹>은 100% 계산에 의한 것이다. 사실 그 영화는 계산이 아니라면 할 것도 없다. 뭘 느낄 수 있는 게 없으니. 나는 다른 배우를 볼 때도 너무 계산적으로 하는 연기를 싫어하는 편이라 그 말이 칭찬이 아닌 것 같더라. 듀나란 사람이 내 영화 한두편 보고 하는 얘기도 아닐 텐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쁜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비호감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어쨌든 그 글을 보니 ‘앞으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은 들더라.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돼가면서 감정 속으로 나를 내몰기보다는 점점 계산적으로 되고 있나’ 하면서 자기반성이 되기도 하고. 요즘 들어 정말 이성을 버리고 스스로를 풀어버리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똘아이 기질과 미친 감성이 있는데 그것만으로 할 수 있는 영화 말이다. 이집트 카이로영화제에 심사하러 갔다가 본 작품 중에 <오페라>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주인공이 아무것도 안 하는데 방황하는 순간이 너무 잘 포착됐다. 나도 저렇게 모든 것을 다 열어놓고 연기하고 싶더라. 내 감성이 어떻게 뻗칠지 모르는, 널뛰는 감성으로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런데 그런 영화는 갈수록 기획되기 힘든 분위기이고. 그렇게 10년의 답답함이 밀려들 때 그 글을 봐서 더 고민이 됐던 것 같다.
-<사과>를 놓고 그렇게 오래 고민했고 그 고민을 영화에 담았는데, 장준환 감독과 결혼생활을 꾸려보니 실제로 어떻던가. =왜 다 짝지어 사는지 알 것 같다. 결혼에는 장점이 있다. 자기가 모자라는 것도 인정하게 되고. 남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나도 충분히 도움을 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사과>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입장은 굉장히 비관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그렇게 본 사람이 있고 낙관적이라고 본 사람도 있다. 장준환 감독도 2006년 10월 부산영화제에서 그 영화를 봤는데 비관적으로 봤다. 이건 좀 새는 이야기인데, 이미 그때는 결혼날짜를 잡은 상황이었지만 가족 외에 주변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화제에서 <사과> 상영을 하고 뒤풀이를 하는데, 장준환 감독과 나란히 앉아 있으니까 강이관 감독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면서 “두 사람은 작업도 같이 안 했는데 왜 딱 달라붙어서 술을 마시는 거냐”고 하더라. 그러면서 “문소리는 내 배운데” 하면서 막 끌어안고 했다. (웃음) 하여간, 영화의 결말을 추락으로 보는 남성 관객이 있다. 하지만 일부 여성 관객은 ‘아 저렇게 해서 따뜻하게 살아가는구나’라고 느낀다. 지금 결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입장에서 남편은 그 영화를 다시 보고 훨씬 희망적이고 따뜻한 것을 많이 발견했고 다른 결말처럼 느껴졌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결혼한 뒤 미혼자들에게 그런다. “결혼 한번 해보지, 생각보다 괜찮을 수 있는데. 관둘 때 관두더라도 한번 해보는 게 나을걸.” 나나 남편이나 미혼일 때 절대 결혼은 안 한다고 말하면서 살았는데, 그렇게 뭔가를 단정짓는 건 안 좋은 듯하다. 대체 왜 “나는 곧 죽어도 영화감독과는 결혼 안 할 거야”라고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지. (웃음)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영화 속 현정은 자연인 문소리가 가장 많이 드러나는 캐릭터인 것 같기도 하다. =VIP 시사가 끝난 뒤 감독들 몇명이 모였는데 그중 임찬상, 민규동 감독은 나와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를 잘 모르는 감독들이 “<사과>의 현정은 실제 문소리와 굉장히 다르지 않냐”고 묻더란다. 그러니까 임찬상, 민규동 감독이 “문소리는 전혀 저렇지 않지. 완전히 연기인 거지” 라고 말했다더라. 이러면서 마무리지으려는 마당에 장준환 감독이 그 테이블에 앉은 거다. 그런데 장준환 감독이 대뜸 “집에서 보던 문소리와 너무 똑같아서 너무 놀랐네. 뜨끔뜨끔하고”라고 이야기하니까 그 자리에 있던 감독들이 으엑, 하면서 놀라더란다. (웃음) 다들 “우리가 문소리를 잘 몰랐던 거네, 그럼 문소리는 뭐야?” 하면서 의아해했다더라.
-어떤 면이 비슷한가. =많은 면이 비슷하다. 욕심부리고 열심히 하려는 면도 비슷하고. 누구한테 정을 많이 주려 하고 사랑을 많이 받으려는 점도 비슷한 것 같고. 그렇게 사소한 행동이 비슷한 모양이다.
-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에도 출연 중인데, 본격적인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출연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안 해보면 나중에는 결정하기 더 어려울 것 같아서다. 가뜩이나 방송 시스템은 뭐가 뭔지 모르는데 나중에는 정말 쪽팔려서 못할 것 같더라. 이번에도 적응하려니 어려웠다. 용어도 다 다르고. ‘히도리!’ 그러는데 뭔 말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사람만 앵글에 걸리는 거더라. 누구는 그런 게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지만 몰랐을 때의 두려움은 몇배가 큰 거다. 이참에 한번 알아보자는 마음을 먹은 거다.
-가족과 함께 보기에 민망한 내용이 있지 않나. =민망할 때도 있다. 방송이 될 때는 웬만하면 집에 안 들어간다. 아, 그런데 이번 추석이 하필이면 주말이었잖나. 그래서 다같이 보는데, 민망할 것 같아서 다들 술을 먹고…. (웃음) 게다가 막판에 이종원씨와의 키스신이 나와서 “여보, 장 코치, 나 좀 봐요” 이러면서 시선을 돌리게 하려 했다. (웃음)
-장 코치? =내가 장 코치라고 부른다. 사귈 때 어떻게 부를까 고민을 했더니 ‘오빠’라고 하라더라. 그래서 “오빠는 무슨 오빠야 감독님이지” 그랬더니 “사귀는 사이에 무슨 감독이냐”면서 “그럼 감독 말고 코치라고 해”라더라. (웃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그렇고 <태왕사신기>도 그렇고, 육체적으로 힘든 작품을 하다 보니 좀 편하게 느껴지겠다. =지금도 두들겨맞고 나가떨어지고 하는 연기를 잘한다고 감독님에게 칭찬받는다. 촬영 때 이종원 선배님은 절대로 안 때려주고 안 밀어줘서 나 혼자 나가떨어지고, 따귀맞은 것처럼 고개도 팍 돌리고 하는데, 감독님에게 그럴 때만 칭찬받는다. (웃음) “핸드볼 해서 그런지 쟤가 좀 몸은 쓰는 편이야” 이러신다. 그러면 나는 “감독님, 제가 얼굴은 못 써도 몸은 좀 써요”라고 한다. (웃음)
-드라마 이후 계획된 영화도 있나. =제의가 있긴 한데, 내년에는 아기를 가져볼까 하고 거절하고 있는 편이다.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 또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신혼 때였고 그 와중에 이런저런 작품도 했으니 좋았던 때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어느 순간을 살면서 최고의 순간이라고 누리고, 즐기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성격상 그렇기도 한데 좋은 순간이 오면 그 다음을 더 걱정하게 된다. 상을 받아도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걱정을 한다. 심지어 (전)도연 언니가 칸에서 상 받자마자 ‘도연 언니 다음 작품 뭐하지? 애 낳으셔야 하나, 드라마 다시 하실 수 있을까, 아니 그걸 내가 왜 걱정하고 있어’ (웃음) 이러면서…. 사실 이전까지 누리고 즐겼던 것 같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치열하게 무언가를 했을 때가 가장 즐겼던 순간이었을 거다. 그런데 이젠 그건 끝난 거니까.
-그래도 즐기며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음, 그래도 그런 생각은 한다. 남편과 자기 전에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이런저런 형편을 다 따져보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 행복함이 전달되도록 우리의 행복을 좀더 티 내면서 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