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의 쓰임을 묻는 질문의 답은 뻔하다. 눈은 보기 위해서, 귀는 듣기 위해서 얼굴의 제 위치에 반듯하게 놓여져 있다. 그러나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벌써 9번째 영화제를 진행한다.
제9회 장애인영화제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보고, 마음으로 하나되는 영화 페스티벌’이다. 상영작은 장애인을 소재로 하거나 장애인이 만든 독립영화(장편·단편·애니메이션) 30편. 그중 15편은 7월과 8월 사이 한달 동안 ‘장애인영화제 UCC 공모전’을 통해 지원작으로 선정된 영화들이다. UCC 공모전은 장애인의 영상물 제작 참여를 유도하고 영화 사전 제작을 지원함으로써 장애인 영화 제작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장애인·비장애인을 넘어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영화를 즐기는 비영리 영화제”가 모토인 제9회 장애인영화제는 11월3일부터 5일까지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열린다.
개막작은 김광호 감독의 <궤도>. 영화는 두팔이 없는 철수와 소리를 듣지 못하는 향숙의 기묘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다. 단순히 장애를 가진 주인공들의 이야기여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아니다. <궤도>는 오히려 두팔이 없는 철수가 발가락으로 담배를 말아 피우고 발로 식사를 하고 머리를 감는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호기심의 대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또한 ‘기피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장애인을 육체의 결핍이 아닌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폐막작 계운경 감독의 <팬지와 담쟁이> 역시 힘들게 살아가는 장애인의 성공담이 아니다. 결혼을 꿈꾸는 두 여성, 수정과 윤정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그들의 일상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시도한다. “장애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편견없는 분위기를 확산한다”는 장애인영화제의 지향점과 꼭 어울리는 작품들이다.
상영작들은 때론 직설적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표현방법만 다를 뿐 영화의 목소리는 한가지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니 편견을 거두고 장애인의 권리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 송영윤 감독의 <꿈이었으면>은 시각장애인 난타 공연팀원인 젊은 남자의 이야기다. 지난해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적이 있는 그는 고등학생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시력을 잃고 귀에만 의지해야 하는 삶이 쉬울 리는 없지만 음악을 만나 미래를 꿈꾸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박재현 감독의 <그림의 떡>은 장애인들의 영화관람권, 극장접근권에 대한 영화다. 청각장애를 가진 청년이 (자막 제공이 되지 않는) 한국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지만 도통 내용을 알 수 없다. 아무리 슬픈 영화도, 재밌는 영화도 그에겐 지루한 영화일 뿐이다. 한국 청각장애인의 현실을 간접체험하게 해주는 영화다. 홍준원 감독의 <해피버스데이>의 주인공은 왜소증 장애인. 왜소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는 키가 커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믿음 하나로 아들의 키를 무리하게 늘린다. 소수자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감독의 센스가 돋보인다. 이진영 감독은 <엄마가 아들에게, 사랑을 담아 하이킥!>을 통해 장애인과 여성 두 가지 문제를 다룬다. 강식 엄마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남편과 아들의 주먹질에도 항변할 수 없다. 엄마는 결국 전직 격투기 선수였던 아들과 함께 링에 올라 몸으로 마음을 전한다.
영화제쪽은 영화제 동안 비장애인의 장애체험, 연예인 초청 경기, 배우 및 감독과의 대화 등 부대행사들을 준비했다. 특히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알게 된다고, 비장애인의 장애체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영화제 홈페이지(www.pdff.net)에 접속해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면 보고 싶은 영화 한편을 무료로 감상할 수도 있다(문의: 02-461-2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