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중국의 한 젊은 프로듀서와 중국영화산업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중국영화는 중국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라고 말하기에 중국식이 어떤 것이냐고 좀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건 생각을 통해 나온 게 아니고 그냥 본능적으로 느끼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는 국제적 언어라고 하지만, 그건 국제적으로 통한다는 뜻이지 모든 나라가 동일한 영화적 언어를 가졌다는 말은 아니다. 할리우드는 자신들의 방식을 영화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믿어주길 바라지만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전통적인 3막 구조만이 완벽한 화법이라 믿도록 관객을 세뇌하려 해왔다.
여러 면에서 할리우드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할리우드가 그 구조를 발명한 것은 아니다. 발단과 전개, 절정을 거쳐 결말에 이르는 3막 구조는 2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극과 음악에서 사용되며 검증받은 드라마 구조다. 연극, 음악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유럽에서 발명되어 미국에서 산업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유럽의 3막 구조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 채택되고 다듬어졌고(시나리오를 쓰는 데서 이 구조를 벗어나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엄격한 태도로), 그 결과 완벽한 이야기 구조처럼 보이게 되었다.
전통적인 할리우드 시나리오는 인물보다는 플롯에 의해 진행되는 한편, 유럽의 시나리오는 그 반대다. 동아시아의 상황은 좀더 복잡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영화산업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다른 동아시아 영화산업과는 별다른 유대관계가 없었다. 1960년대 이후 홍콩은- 중국이 모든 국제적 관계를 끊은 상황에서- 한국과 대만에 경제적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스타일과 대중 장르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홍콩에는 홍콩 특유의 이야기 스타일이 있었다. 상업적이고 과장되고 감정적이다. 모든 이야기를 다 표면에 꺼내놓는다. 시나리오 구조보다는 순간적인 오락성이 중요시되었다. 영화는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산물로 여겨졌다. 홍콩영화는 1990년대 새로운 중산층 계급의 세대가 등장하면서 그 생생한 에너지를 잃었지만 이야기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할리우드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홍콩식 이야기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홍콩영화가 제3막에 이르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는 할리우드영화를 베낀다는 이유로 종종 비난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새로운 한국영화는 자신만의 이야기 스타일을 갖고 있다. 초반에 플롯보다 인물에 중점을 두어 천천히 이야기가 전개되고(이것이 대개 영화의 중반까지 차지한다), 이야기는 그 중반부터 결말에 이르며 점진적으로 심화된다. 이런 이야기 전개는 할리우드의 3막 구조와는 확연히 다르다.
앞에서 말한 중국 프로듀서가 뭐라 말로 꼭 집어 표현은 못했지만, 중국 본토 영화는 이미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역사와 사회적 변화에 뿌리를 두고, 다른 어떤 동아시아영화보다 더 가깝게 하루하루의 삶을 조망하는 것 말이다. 중국영화의 이야기 스타일에는 한국영화 같은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격렬함이 없으며, 일본영화처럼 모든 것을 이상화하는 데 집착하지도 않고, 홍콩영화처럼 되는 대로 막 나아가는 태도와도 다른 그 무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