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죽었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방황하다가 스스로 바닷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의 어머니는 열두명의 자식 중 한명이었던 그의 장례식을 이미 오래전에 치른 남편의 장례식과 혼동한다. 남자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윤간처럼 빠르게 간통처럼 빠르게 연이어 태어난” 손아래 동생 베로니카뿐이다. 그녀는 오빠 리엄의 자살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가족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3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리엄의 삶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개더링>은 형제의 죽음에 대한 한 여성의 사색을 통해 그녀의 혈관에 저장된 아일랜드의 역사를 조명한다. 베로니카는 무심한 어머니와 가부장적인 아버지, 가족의 문제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형제들을 뼛속 깊이 증오하지만 결코 그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자신의 피에서 도망치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베로니카의 모습은 아일랜드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지만 끝내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던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2007년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를 제치고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치밀한 묘사와 넘치는 사색이 제임스 조이스를, 도발적이고 여성적인 문체가 버지니아 울프를 연상케 하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