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음악 지수 ★★★☆ 배우들 연기 지수 ★★ 가을이지만 식상해 지수★★★★

청년 루카(킴 로지 스튜어트)는 피아노의 달인이다. 독학으로 배웠지만 콧대 높은 클래식 음악 학교 선생들이 모두 놀랄 정도다. 어느 날 그에게 낯선 두 청년이 찾아와 재즈 트리오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재즈가 뭔지 모른다는 그에게 그들은 버드 파웰의 앨범을 던져주고 간다. 이 앨범을 듣고 재즈에 흠뻑 빠진 루카는 그들과 트리오를 결성하고 클럽에서 공연하며 인기를 얻어간다. 그동안 그곳에서 사랑하는 평생의 여인 신치아(자스민 트린카)도 알게 된다. 하지만 유년 시절 엄마를 자동차 사고로 잃은 기억이 있던 루카는 성장해서는 아버지와 묘한 대치를 이루는가 하면, 자기의 천재적인 예술성에 어떤 이상한 공포감을 갖고 있다. 자기가 작곡한 음계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믿고 있는 것. 함께 공연했던 유명 재즈 뮤지션 쳇 베이커가 투신자살하면서 루카는 그 망상에 더 깊이 빠져들고 마침내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탈리아영화 <피아노, 솔로>는 실제로 쳇 베이커 등과 함께 공연하면서 명성을 쌓았던 재즈 피아니스트 루카 플로레스의 생을 모델로 한 전기영화다. 그리고 음악인의 삶을 모델로 한 음악영화이기도 하다. 매년 가을바람을 타고 찾아오는 영화들 중 한편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한 예술가의 삶을 그리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요소들. 그는 불우한 유년의 기억을 갖고 있고 평생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걸 보여주는 방식으로 꿈같은 유년으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를 이야기한 뒤 다시 유년을 끌어안는다. 불우한 유년의 기억은 이 예술가에게 짐처럼 계속 남겨져 있지만 한편 그는 타고난 천재성 또한 갖고 있다. 천재성은 주변의 조력자들을 만나 마침내 진가를 발휘하고, 허름한 클럽에서 시작하여 유명 뮤지션과의 동행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천재성은 광기도 수반한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시작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중반부터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배우들에게 너무 많은 감정선을 맡기고 있어 다소 부담스러워지며, 감독은 어떻게 영화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댄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 아름다운 재즈 음악을 듣는 건 어떤 영화에서나 늘 즐거운 일이고, <피아노, 솔로>는 사이마다 그걸 충분히 들려준다. 전기영화로서는 확실히 실패작이고 음악영화로서는 경우에 따라 즐길 만하다.

Tip/영화 속에는 유명 트럼펫 연주자였던 쳇 베이커의 투신자살 일화가 있다. 쳇 베이커는 실제로 1988년 5월13일 암스테르담의 어느 호텔에서 마약을 하고 투신자살했다. 극중에서 신문 기사에서 그 소식을 접한 주인공 루카는 자기의 “마단조 음계가 쳇을 죽였다”며 괴로워하고 미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