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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자의 시선으로 보는 삶의 비극성 <나는, 인어공주>
문석 2008-10-22

낯선 신선함 지수 ★★★ 21세기 모스크바 유람 지수 ★★★ 일관된 맥락 지수 ★☆

러시아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알리사(마샤 살라예바)는 바닷속에서 잉태된 아이다. 아빠가 바람처럼 스쳐간 이후 지나치는 남자들에게도 순정을 바치는 엄마에게 짜증난 알리사는 집에 불을 지르고, 일식이 있던 날 다시는 입을 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어느덧 10대 후반이 돼 모스크바로 이주한 알리사는 강으로 뛰어든 남자 사샤(예프게니 츠가노프)를 구해내고 그의 잘생긴 외모에 반한다. 알리사는 달 분양사업을 하는 사샤의 주변을 맴돌지만 사샤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는, 인어공주>의 원제 ‘루살카’(Rusalka)는 슬라브족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다. 물속에 살고 있는 루살카는 밤이면 뭍으로 나와 아름다운 노래와 춤으로 남성들을 물속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알리사는 루살카보다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속 인어에 더 가깝다. 물에 빠진 왕자님을 구한 뒤 사랑하게 되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왕자 때문에 물속의 포말이 되어버린 그 공주 말이다. <나는, 인어공주>는 이러한 동화 또는 신화적 세계를 21세기의 자본주의 러시아 속으로 투영한다. 알리사가 공주가 아니듯 사샤 또한 왕자가 아니다. 달을 분양하는 그의 사업은 개발과 소유의 광기에 휩싸인 러시아 자본주의의 한 말단이다. ‘간절히 원하라, 그럼 이뤄질 것이다’ 같은 동화적 구호도 이곳에서는 상품을 광고하는 홍보문구에 불과하다. 이렇게 돈을 벌고 쓰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 알리사는 뭍으로 올라온 인어만큼이나 무력하다. 다소 산만한 구성과 표현의 과잉이 엿보이긴 하지만, <나는, 인어공주>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우리 삶의 비극성을 짚어낸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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