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대비 등장하는 주변 인물의 수 ★★★★☆ 그 인물들이 등장해야 할 필요성 지수 ★☆ 미스터리 혹은 반전의 난이도 ★★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이자 사랑의 계절이다. 두 가지가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돌이켜보면 <러브 스토리> <필라델피아> 등 영화 속 기억에 남는 사랑 중에는 도서관에서 시작되는 것들이 꽤 있었다. 서가에 꽂힌 책들마다 들어찬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설렘과 영화의 시작 혹은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마음은 통하는 면이 있다. 도서관에서 시작되는 <그 남자의 책 198쪽> 속 첫만남과 이후 연결되는 인연 역시 가을과 제법 어울린다.
얼핏 평범한 옛사랑의 회고 혹은 머뭇거리는 사랑의 시작을 말하는 <그 남자의 책 198쪽>을 채운 것은 크고 작은 미스터리들이다. 평일 낮 시간, 멀끔한 양복차림으로 손에 깁스를 한 채 도서관을 찾은 뒤, 다짜고짜 책의 한 페이지씩 찢는 이 남자, 준오(이동욱). 전 여자친구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남겼다는, 문제의 책 198쪽을 찾기 위해 시작된 이 여정을 따라잡는 과정에서 해소되어야 할 주요한 호기심은 대략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준오의 정체, 전 여자친구의 진심과 행방, 그리고 준오에게 동화되어 그를 돕게 되는 도서관 사서, 은수(유진)의 상처. ‘가을의 사랑 영화’라는 영화의 장르(?)를 고려한다면 준오와 유진의 관계가 결국 어찌될 것인지는 너무 당연해 보이므로 일단 패스.
대부분의 미스터리는 설명이 될 것이고, 그중 무엇인가는 의도적으로 감춰질 것이다. 아쉬운 것은 원작이 지닌 단편소설 특유의 간결한 미스터리를 영화적이고 대중적으로 옮기기 위한 발랄한 시도들이 다소 산만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을 둘러싼 조역 혹은 단역들이 차고 넘친다. 이들이 반복과 변주를 통해 엮어내는 유머와 반전, 깨달음 중 일부는 결국 개연성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보는 이를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데 그치고 만다. 도서관을 가득 채운 책마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듯 정성스런 나른함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남자의 책’을 넘기는 즐거움은 의외로, 배우들에게서 발견된다. 나사가 빠진 듯 엉뚱한 30대 초반, 준오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것은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의 사서가 직업인 독신여성’에게서 연상되는 노곤한 현실의 이미지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지나온 과거를 향한 냉소와 알 수 없는 타인을 바라보는 호기심과 연민을 동시에 지닌 은수를 연기한 유진의 디테일. 이를 담기 위한 훨씬 좋은 그릇이 있으리라는 아쉬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