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벌어졌던 참사로 인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워너브러더스는 10월5일로 개봉이 예정되어 있던 경찰 액션스릴러 <콜레터럴 데미지>의 개봉을 연기합니다. 이 영화의 새로운 개봉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워너브러더스는 즉각적으로 옥외광고들을 철거하고 웹사이트와 극장을 통해 배포되었던 예고편과 포스터를 포함한 모든 광고물들을 회수하였습니다.’ 지난 9월12일, 개봉을 약 4주 정도 남겨놓고 한창 홍보전에 열을 올리던 워너브러더스 영화 <콜레터럴 데미지>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위와 같은 문구의 공고가 나붙었다. 테러리스트의 폭탄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을 잃은 한 소방관이 복수를 감행한다는 영화 내용이, 9·11 테러를 연상시킨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9월12일 그런 식으로 개봉을 연기한 영화는 또 한편 있었다. 배리 소넨필드가 감독하고 팀 알렌과 르네 루소가 주연한 코미디 <빅 트러블>이 그 주인공. 그 주말에 예정되어 있던 프레스 정킷을 즉시 취소하고, 9월21일 예정이었던 개봉도 무기한 연기한다고 제작사인 터치스톤사가 밝혔던 것이다. 비록 코미디이기는 하지만 서류가방 안에 든 폭탄이 영화의 주요 소재인데다가 그것을 가지고 비행기를 타는 장면이 나오기까지 하기 때문에, 개봉연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연기 조치로 이후, 터치스톤이 <빅 트러블>을 진짜 ‘엄청난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거의 포기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퍼졌다. 무엇보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이후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배리 소넨필드의 연출력이 부족하다는 자체 시사회 평가로 인해 여름시즌으로 예정되어 있던 개봉을 가을로 미루었다가 그런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봉이 무한정 연기된 두 영화는 요즘 어떤 상태일까? 현재까지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두 작품 모두 내년 상반기중 개봉되는 것만은 확실시되고 있다. 비록 아직 인터넷 홈페이지를 재개통하지는 않았지만 <콜레터럴 데미지>의 경우 이미 홍보자료들을 언론사에 다시 발송하기 시작했고, <빅 트러블>은 인터넷을 통한 홍보를 지속적으로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봉 예정작들에 대한 정보를 주로 다루는 Upcomingmovies.com도 <콜레터럴 데미지>는 2월경, <빅 트러블>은 늦어도 봄 즈음에 개봉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영화처럼 개봉만이 미루어진 것이 아니라, 9·11 테러와 함께 제작 자체에 문제가 생겼던 작품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우선 가장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던 <스파이더 맨>의 경우, 예정되었던 2002년 5월 개봉을 지키기 위해 많은 분량의 촬영과 특수효과를 다시 하고 있는 중이다. 테러사태가 나기 1년 전인 지난해 9월, 2001년 11월 예정이었던 개봉일을 2002년 5월로 옮긴 바 있는 <스파이더 맨>의 제작사 소니는 차라리 테러사태가 일찍 일어나 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 <콜레터럴 데미지>처럼 개봉을 얼마 남기지 않고 사태가 일어났다면, 도무지 몇 개월 내에 재촬영과 특수효과를 손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주무대가 뉴욕, 그것도 세계무역센터였다는 사실 때문에, <스파이더 맨>이 이번 테러로 가장 피해를 많이 받은 작품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테러사태가 나기 전에 공개되었던 티저 예고편과 포스터를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소니가 급히 회수한 것도, 그 속에 스파이더 맨이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누비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소니의 그러한 회수와 수정 작업이 진정으로 테러의 희생자들과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에 대해선, 네티즌들의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관객의 정서를 불편하게 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 실제 개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빅 트러블>이 그런 것처럼 <스파이더 맨>도 이번 사태와 상관없이 제작 초기부터 ‘엄청난 골칫거리’로 제작사를 압박해왔다는 사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 3월 촬영현장에서 크레인이 쓰러지면서, 그 주변에서 용접기계를 만지고 있었던 한 스탭이 사망한 사건이다. 제작 스탭에게 닥친 불행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주인공 토비 맥과이어를 대신한 스턴트맨이 연기도중에 다리에 골절상을 입는 사건도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것. 이어 지난 4월에는 주인공 스파이더 맨을 연기하던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 맨 의상이 사라진 사건이 발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의상의 중요성 때문에 소니쪽은 무려 2만5천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결국에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하튼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 맨>은 많은 부분이 대폭 수정되어 내년 5월의 개봉예정일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제작이 중단되었다는 항간의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계속되는 제작 현장의 소식들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 밖에도 9·11 테러 당시 뉴욕에서 촬영중이던 <맨 인 블랙2>와 <스튜어트 리틀2> 역시 촬영을 재개해, 제작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시 경찰국이 9월18일 영화촬영을 위해 경찰병력을 다시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대상 작품으로 <스파이더 맨>과 함께 이 두 영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했기 때문. 결국 9·11 테러로 영향을 받았던 대부분의 영화들이 이제 거의 제자리를 찾아온 셈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스파이더 맨> 공식 홈페이지 http://spiderman.sonypictures.com/
<콜레터럴 데미지> 공식 홈페이지 http://collateraldamage.warnerbros.com/
<빅 트러블> 공식 홈페이지 http://studio.go.com/movies/bigtrou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