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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내 기억을 훔쳐간 왕가위

<동사서독>을 복원, 편집한 <동사서독 리덕스>를 보면서 느낀 거북한 감정의 원인

칸과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인 <동사서독 리덕스>는 왕가위 감독의 ‘신작’이다. ‘신작’이라고 부르는 건 이 작품이 1992년과 1994년 사이에 촬영된 뒤 2008년에 다시 복원, 편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왕가위의 이 수리(修理) 영화는 새로운 장면과 인물들이 나오던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와 달리 작품의 의미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영상은 컴퓨터로 재편집됐고 새로운 음악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첨가됐다. 리덕스. 이건 보톡스가 약간 들어 있는 주름살 제거다. 이제부터 왕 감독에겐 이 버전이 <동사서독>의 결정판이다.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칼럼은 1994년에 인쇄됐던 걸 다시 리덕스한 게 아니라는 사실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러니까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아니 내가 좋아했던, 아니 그러니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어떤 영화의 새로운 버전을 보고 느낀 거북한 감정에 대해 쓴 내 칼럼의 원본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두시길.

왕가위는 “그 시절 이후 내가 겪은 경험이나 변화의 프리즘으로 작품을 재조명하지 않도록 했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거의 불가능한 포부다. <동사서독 리덕스>는 자신의 취향에 계속적으로 발전을 보인, 자신의 예술에 능수능란한 영화감독이 만든 2008년 작품이다. 예를 들어 원래 <동사서독>에 나오던 음악에는 처음 제작 당시의 합성음악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데 이번 <동사서독 리덕스>를 만들면서 왕가위는 거장 요요마를 불러들였고, 요요마는 오늘의 구미에 맞는 우아하고 세련된 멜로디를 왕가위에게 선사했다.

지난 시절의 작품으로 되돌아오는 건 본디 성숙기의 중견작가들이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던가? 왕가위는 연습없이 촬영하던 작가, 마치 재즈 음악가처럼 즉흥적으로 작품을 만들던 감독이다. 그는 <해피 투게더> 시절 <포지티브>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우연이라는 걸 많이 믿습니다. ……. 각 작품 속엔 그 작품 나름의 찬스가 내재하는 법이거든요”라고 말했다. 당시 혈기 왕성하던 영화인 왕가위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오늘 자신의 말을 번복하게 되리라고는 아마 상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동사서독 리덕스>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편의 영화를 볼 때 ‘영화’는 내게 곧 ‘영화의 추억’이 된다.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내가 본 장면들은 내 기억에서 곧 소멸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여러 장면들, 부수적 인물들은 하나하나 증발해버린다. 결국은 막연한 느낌과 몇 가지 영상들만 내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건 다시 말해 그 남아 있는 파편들을 나 스스로 선택했다는 소리가 된다. 더구나 내게 남은 그 조각들이 ‘내 것’인 이유는 그것들이 그 시절 나의 또 다른 기억들과 얽히기 때문이다. 어느 영화관에서 봤던가? 누구랑 봤던가? 한마디로,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과 내가 본 영화는 하나가 된다는 소리다. <동사서독 리덕스>를 보면서 나는 이러한 나의 권리를 작가에게 거부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파지와 같은 영상의 질감, 좀 더러워 보이는 그 사진들이 나는 좋았었다. 그걸 보며 나는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필름을 긁는 사막의 모래알을 연상하곤 했었다. 왕가위는 그런 영상 위에 유리종이를 덧씌운 것이다.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객관적으로도 더 아름답다지만 아무래도 내 맘엔 좀체 들지 않는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왕가위는 유가령이 말을 타고 나오는 널따란 컷 하나를 잘라버렸다. 내가 참 좋아하던 장면이었는데 말이다. 분명 영화는 작가의 소유다. 왕가위는 이 장면이 신작에 나올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는 나의 기억 하나를 훔쳐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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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