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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놀아봐!
2001-11-15

영화 패러디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변신한 지오다노 광고

광고계와 패션계는 형제처럼 닮은 구석이 많다. 어느 분야보다 더 발빠르게 유행을 포착하고 반영하며 선도한다는 점도 비슷하고, 사소하게는 영어와 친하다는 점도 유사하다. 광고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크리에이티브, 임팩트 등 영어투성이다. 패션과 관련한 질문을 받으면 영어에 도통 자신없는 사람도 내추럴이니, 심플이니, 블랙 앤 화이트니 하고 술술 혀를 잘 구부린다. 이는 우리말로 적확하게 대체하기가 쉽지 않은 전문용어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중에는 영어를 사용해야 제맛이 난다는 분야 특유의 ‘버터’ 속성에서 비롯한 것도 있다.

무엇보다 광고계와 패션계가 닮은 점은 왠지 멋져보인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리 멋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상업예술이든 대중예술이든 예술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이들 분야에는 ‘멋있다’라는 감탄사를 자아낼 만한 미적인 동경의 요소가 상대적으로 많이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

패션브랜드 광고는 광고와 패션이 만난 것이니 아무래도 어떤 제품의 CF보다 더 멋을 함유하고 있다는 게 자연스러운 공식이다. 그럼에도 이 멋진 세계를 광고 읽기의 대상으로 삼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선정적이면서 논쟁적인 이슈를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다루고 있는 베네통 광고 같은 별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패션 광고는 특별한 부연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인상적인 모델과 포즈로 구성된 비슷비슷한 양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패션브랜드 광고인 지오다노 CF를 초대했다. 어느날 문득 이 광고를 보면서 ‘멋지다’는 인상을 받았다. 후속 광고는 어떤 모양새를 띨 것인지에 대한 기대도 생겼다. 개인적인 기호만은 아니었는지 실제로도 지오다노 광고는 다수의 소비자에게 인지도를 획득한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영캐주얼 의류브랜드로서는 드물게 TV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데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지오다노 광고는 지난해 영화 <그리스>의 한 장면을 패러디하면서 이른바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단출하게 차려입은 정우성과 고소영이 노래와 춤을 주고받는 이 CF장면은 ‘simply jean’이란 지오다노의 슬로건과 경쾌한 하모니를 이뤘다. TV 오락프로그램이 걸핏하면 뒤로 내빼는 스타를 억지로 끌어내 한번 춤춰보라고 권하는 것도 몸을 통해 무언가를 발산한다는 게 아직은 못내 어색하고 눈치보이는 우리네 문화에서 스타의 춤이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우성과 고소영이 뮤지컬의 주인공처럼 음악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는 장면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구경거리였으며 시청자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후 지오다노 광고는 소통의 주요 타깃이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라는 점을 고려해 여성모델을 고소영에서 전지현으로 교체했다. 정우성과 전지현이 새 커플로 탄생했음을 알리는 첫탄에선 정우성과 전지현이 나란히 풀밭에 누워 있는 스틸사진으로 이뤄진 TV광고답지 않은 형태를 선보였다. 계절별로 소재를 교체하는 주기에 맞춰 탄생한 여름철 광고는 정우성과 전지현에게 휴양지에서 댄스파티를 즐기고 있는 해변의 연인 역을 맡겨 로맨틱 분위기를 풍겼다. 남자가 등 뒤로 다가가서 여자의 헤드폰을 몰래 벗기는 장면은 잘 알려진 대로 영화 <라붐>에서 빌려온 것이다. 지오다노 광고의 특성은 이쯤에서 간추릴 수 있다. 히트영화의 한 장면, 그 영화를 수놓은 감미로운 음악 등을 차용하면서 선남선녀의 사랑을 테마로 전하는 것이다.

가을철을 맞아 새 단장한 지오다노는 이 일관된 흐름에서 약간의 변주를 시도했다. 입에 넣기 딱 좋은 달콤한 사탕 같은 전작의 무난함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기 색깔을 찾은 듯 독창적인 멋을 내고 있다. 배경음악은 ‘우·하·우·하’라는 기합소리가 재미있는 귀에 익은 <징키스칸>. 리듬감 있게 전개되는 이 복고음악에 맞춰 가죽상의를 입은 정우성과 전지현이 결투를 벌인다. 다리를 쭉 뻗어 발차기를 하고, 주먹으로 상대의 얼굴을 가격하는 정우성과 전지현은 액션 히어로와 헤로인으로 손색없는 몸동작을 보여준다. 표정과 몸의 움직임을 극대화한 이들의 과장스러운 동작이 웃음을 자아낸다. 정우성(<무사>)과 전지현(<엽기적인 그녀>)의 최근 출연작을 고려한 듯한 흔적이 짙은 코믹액션 스타일의 이 CF는 눈과 귀에 쏙쏙 박히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를 보여준다. 정지화면을 적절히 가미해 화면의 흐름에 리듬감을 부여한 편집방식도 돋보인다.

정교하게 모델의 연기를 연출했다기보다 정우성과 전지현을 마음껏 놀도록 유도해 촬영한 다음 최상의 장면을 추출한 듯한 이 광고는 당당한 유희정신을 뿜어낸다. 가죽재킷에 청바지를 입은 선남선녀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몸의 에너지를 분출하며 거침없이 자유를 발산한다. ‘날 봐달라’고 결코 강요하지 않지만 그들만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모습은 절로 시선을 매혹하는 힘이 있다.

제작연도 2001년 광고주 지오다노 제품명 지오다노 대행사 플랜즈어헤드 제작사 유레카(감독 김규환)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