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시티>(Sex and the City)는 적나라한 제목만큼 적나라한 드라마이다. 뉴욕에서 먹을 것, 입을 것 부족함 없이 사는 네 여자의 연애담을 걸판지게 풀어놓는다. 말이야 잘하지만 연애에는 한 사람에게 목매고 살 수밖에 없는 캐리, 언제나 남자 ‘따먹는’ 게 취미인 사만다, 매사에 냉소적이지만 결국 뒤통수는 다 맞고 사는 미란다, 순진한 척하려 하지만 결국 발랑 까진 삶을 사는 샬롯, 그 넷 중 한명인 칼럼니스트 캐리가 쓰는 칼럼 자체가 ‘성과 도시’, 즉 ‘섹스 앤드 시티’이다. 그러나 여자들만 등장하는 이야기 혹은 여자주인공을 중심으로 애정사를 그려가는 이야기는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 25분짜리 드라마 <섹스&시티>가 에미상과 골든글로브를 휩쓸며 튀는 것일까? 단지 제목 때문만은 아닐 텐데.
이 드라마가 유달리 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면, 바로 배급을 담당하는 HBO라는 채널에 대해 약간의 사전지식이 있어야 한다. 미국 유료 영화채널의 자존심으로서, 미국 HBO(Home Box Office)는 원판 방영을 모토로 내세웠고, 이를 법정에까지 끌어들여 무삭제 방영을 통과시킨 케이블 방송사다. 이를 통과시킨 뒤에 HBO는 단지 영화 방영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삭제에 따른 저질시비를 없애기 위해 장편영화, 시리즈, 쇼 등 자체 제작물에 혼신을 다했다. <크리스 터커 쇼> <소프라노스> 등과 함께 <섹스&시티>는 HBO의 간판 프로그램으로서 한몫을 한다. 원판 방영, 이 말은 화면도 안 자르고 언어 제한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소프라노스>도 그렇고 <섹스 앤 시티>도 모두 언어 정도가 극장에서 개봉하는 R등급에 해당한다. 이것은 욕설 새끈하기로 유명한 <사우스 파크>조차도 TV 방영 때에는 하지 못하는 등급에 해당한다. 이쯤되면 짐작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은 바로 다렌 스타. <비벌리힐스 아이들> <멜로즈 플레이스>로 유명한, 깊이 없이 남녀 얽히는 이야기 만드는 데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제작자이다. 다렌 스타가 R등급을 만났을 때, 이것이 바로 <섹스&시티>가 가장 튀는 부분이다. 이 드라마는 그렇고 그런 여자들 연애담과 차별화를 두고 출발한 것이다. ‘씨발’, ‘존나’ 등의 단어에 개의치 않고 섹스신도 웬만하면 다 넣기로 결정한 적나라한 애정드라마라는 점이, <섹스&시티>의 최대 무기이다.
그러나 역으로 강도가 세다, 말고는 다른 드라마와 다른 것이 별로 없다는 뜻도 된다. 아무리 강도가 세도 여자들 이야긴데 여자들이 공감을 못하면 말짱 헛것이 된다. 다행히도 <섹스&시티>의 가장 큰 매력은, 이 여자들이 걸판지다는 것이 아니라 걸판진 와중에도 분명히 여자들만이 지닌 코드를 각자 가지고 있고 이것이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캐릭터를 분화해서 조율하는 재주는 <섹스&시티> 역시 천재적이다. 친구로서 이 네명은 서로의 앞에서는 잡아먹을 듯이 야리기에, 아픈 곳 찌르기에 선수면서도 진심으로 친하고, 이를 괜히 껴안고 오버하는 톤으로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섹스&시티>에서 이 점이 제일 좋다. 섹스에 관해서는 도발적이고 오버를 해대는데, 여자들의 우정에는 눈으로 보이는 것말고도 서로 면박주는 사이사이에 흘러가는 교류가 있다는 것을 살짝살짝 보여준다. 보일 듯 말 듯 섬세하게 순간을 잡아내는 것도 탁월하다. 캐리는 “10대들의 우정이란 술 먹고 토할 때 안 묻도록 머리카락 잡아주는 것”이라고 빈정거려놓고 나서는, 자기가 분노를 못 이겨 그만 먹은 것을 다 게워놓는다. 그때 미란다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머리카락을 잡아준다. 절망과 자기혐오 속에서 캐리는 말없이 위안을 받는 것이다. 그 순간은 정말, 나라도 캐리를 보듬어주고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속이 꼴리는 고년’의 온갖 험담을 들어도 위안을 못 얻던 우리의 캐리. 그 절망의 구렁텅이를 헤매다 ‘고년’이 철자도 제대로 모르는 닭대가리라는 것을 알고서는 세상이 밝아진다. 바로 이런 사소한 것들이 무지하게 즐겁다.
그런데 이토록 적나라해도 알콩달콩하니 재미있는 <섹스&시티>의 감상을 방해하는 무리가 있으니, 바로 어이없게도 이 드라마를 방영하는 한국 HBO이다. 한국 HBO에서는 이 ‘여성을 위한 드라마’ <섹스&시티>의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도록 해줬다. 그래서 캐리는 아직도, 빅에게 존댓말을 한다. 얼마나 속 뒤집히는 일인가 말이다. 처음에는 모든 남자들에게 존댓말을 했다가 실컷 욕먹고 나더니 나아졌다지만, 번역을 누가 관장하는지 여자 하대는 여전하기 그지없다. 미국 HBO가 이룩해낸 걸판짐이 한국 HBO로 오면 삐걱댄다. 옷은 똑같이 벗어던지는데 왜 말은 저 지경인고? 이토록 재미있는데, 손거울과 PDA도 구분 못하는 기본 소양조차 부족한 번역체계가 매력을 깎아먹는다. 한국 HBO 광고만 보면 <섹스&시티>를 챙겨볼 마음이 싹 달아나버리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