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열흘 만에 영화를 봤다. 그것도 주연배우의 숨결을 느끼면서. 김주혁이 바로 내 뒤에 앉았었다고(의자라도 발로 쳐주지). 그래서 뭐가 어쨌냐면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영화 끝나고 뒤태로라도 진지한 관객인 양 보여야 할 듯해 홍보물을 꼭 쥐고 나온 덕에 이 문구를 보게 됐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 있습니까?” 물론 있다. 늘 마지막이 진짜거든. 히히.
이 영화는 빈약한 독점이냐, 풍부한 공유냐 뭘 택할지 묻는다. 결국 사랑의 방식이 문제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의사·변호사, 금융계 임직원 등도 마찬가지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06년 쌀소득보전 직접지불금을 받아간 99만8천명 가운데 28만명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은 이런 이들로 추정된다고 한다. ‘투잡족’도 일부 있겠지만, 상당수는 땅을 각별히 사랑해 소유만 했을 뿐 흙 한번 만져본 적 없다. 이들이 그해에만 1680억원을 꿀꺽 했다.
추곡수매제를 대신해 2005년부터 시행한 이 제도는 농가의 소득보전 수단이다. 목표로 한 쌀값 가격과 산지 쌀값 차액의 85%를 정부가 현금으로 메워준다. 시장 개방에 대비해 쌀을 공공비축제로 다루며 지속 가능한 농삿일을 위해 도입한 번듯한 취지의 제도인데, 도회지에 번듯한 직장을 가진 이들이 타버렸다. 지주들과 거대 기업농이 이 제도를 악용하는 동안 진짜 농사를 짓고도 직불금을 타지 못하거나 땅주인에게 새치기당한 농가는 2006년 한해만 7만1천여 가구. 그해 농협수매 실적이 있는 농가가 53만 가구이니 적지 않은 수치이다.
이봉화 아줌마처럼 남편이 일년에 무려(!) 7~8차례나 농사를 지었는데 “몰라서” 자기 이름으로 신청했다며, “왜 나만 문제 삼냐”고 항변하고픈 이들도 있겠지만, 번듯한 돈벌이가 있는 분들이 고작 몇십만원 더 챙기려고 그런 건 아닐 터이다. 나중에 땅을 팔아 시세차익을 얻을 때 실경작자에게 해당하는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보려고 그러는 거다. 즉, 땅에 대한 자기 사랑을 증명하고 싶은 거다.
근데 그 사랑이 사기란다. 땀흘려 일한 이들의 소득을 가로챈 파렴치한 사기 말이다. 이건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의 말이다. 특히 공직자로서 국토의 일부인 땅을 각별히 사랑한 결과 직불금을 불법·편법 수령한 공무원들은 명단을 공개하고 환수조처하며 사법처리까지 하겠다니, 아, 결국 사랑이 죄다. 역시 땅을 각별히 사랑한 한나라당 의원 중 한분은 “나 모르게 아내가 탔다”면서 그 동네 유구한 전통의 ‘아내 사랑’을 빼놓지 않으셨다. 이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의 사랑 방식은 어쩜 이리 비슷한지. 어쨌든 모든 사랑은 마지막이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