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국영화에 대해 듣는 이야기(특히 외국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중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한국영화의 많은 수가 멜로드라마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영화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들이 모두 할리우드의 복제품은 아니지 않은가. 첫 번째 얘기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건 지나친 단순화인데다가 멜로드라마는 열등한 싸구려 장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영화의 많은 걸작들은 결국 멜로드라마로 분류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얘기들에 일말의 진실이 없는 건 아니다. 멜로드라마는 정의하기도 어렵지만 그 개념 자체를 생각해보면 꽤나 의미심장하다. 멜로드라마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음악을 의미하는 ‘멜로스’(melos)에서 왔다. 한국 감독들은 특정한 장면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음악을 과다하게 사용한다. 유럽 영화비평가들은 특히 한국영화의 음악 사용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해왔다. 더 일반적으로,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정의는 이 장르가 관객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과장과 감정적인 잉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영화학자들은 멜로드라마를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했다. 버클리대학 교수인 린다 윌리엄스는 멜로드라마를 순수라는 이슈를 다루는 영화의 한 형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녀에 따르면, “멜로드라마는 순수의 공간에서 시작하고 끝나고자 한다”. 멜로드라마의 이야기의 중심은 주인공이 결국 끝에 가서 행복하게 살게 되느냐가 아니라 주인공의 순수성이 입증 혹은 인정되었는가이다. 물론 <쉬리>에서 김윤진의 캐릭터가 죽을 때 슬프지만, 우리가 좀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녀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결국 좋은 사람이었는가 하는 문제다. 이창동의 <오아시스>의 중심에도 이런 선함과 순수에 대한 질문이 자리잡고 있다.
더 놀랍게도 윌리엄스는 멜로드라마가 할리우드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할리우드에서 내놓는 영화 중에서 멜로드라마로 분류되는 영화는 소수지만, 모든 장르의 영화가 멜로드라마적 모드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할리우드영화들은 언뜻 보기에는 리얼리즘적 성향을 가진 것 같지만 그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피해자)들에 관객이 공감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멜로드라마적이다. 그녀에 따르면, 위선적이게도 미국 문화는 미국영화에서 자주 미덕과 순수의 샘으로 그려진다.
할리우드영화와 한국영화가 비평가들의 눈에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이런 순수함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이와 달리 프랑스, 또는 홍콩영화는 이 주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나는 부산영화제에서 양익준의 <똥파리>를 보며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영화의 도입부만 보면 주인공이 순수하냐, 죄지은 자냐에 대해 질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여중생들의 얼굴을 후려치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는 관객에게 이 사람도 사실은 마음 깊숙이에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고 설득하려고 한다. 괴로운 사실주의로 시작한 영화가 마지막에는 음악과 눈물 속에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