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의 영상투자조합 출자 사업이 국정감사 도마에 올랐지만 정작 영진위쪽에선 적극적인 해명이 나오지 않아 영화계 안팎의 의구심을 사고 있다. 10월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은 영진위의 해당 사업에 공정성 시비를 제기했다. 진 의원은 “MK픽처스의 이모 대표가 ‘영화 다양성을 위한 전문 투자조합’ 심사위원장이었고, 그의 부인인 MK픽처스의 심모 이사가 영진위가 출자한 영상전문투자조합의 진단, 평가위원으로 활동했다며, “투자조합이 특정 관계조합원의 사금고로 전락될 여지가 있다”고 시정을 요구했다. 진 의원은 더 나아가 영진위가 2000년에서 2007년까지 출자한 32개 영상전문투자조합 중 현재 운용 중인 23개 조합의 수익률은 평균 -10.1%’에 불과하다며, 영진위 내부의 실책이 한국영화 침체를 불러왔다고 덧붙였다.
영진위는 이 사안에 대해 10월9일까지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진 의원이 지목한 MK픽처스의 이은 대표는 10월9일 <씨네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비난받을 일이 아닌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면서 “영진위쪽의 입장 표명이 있지 않겠나. 아직은 지켜보겠다”고 했지만, 영진위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씨네21>은 이와 관련해 강한섭 영진위 위원장에게 전화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응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만 전해들었다. 한 영화인은 “3기 위원회에 대한 국회의 문제제기를 굳이 4기 위원회가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일종의 회피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전했다. 참고로 10월6일 국정감사에서 진 의원은 “3기 영진위 위원 3인이 임기 중 자신과 관련한 특정 단체에 41억원의 기금을 집중 지원했다”는 비난도 내놓았다.
영진위가 자신에게 쏟아진 화살을 ‘나몰라라’ 하는 가운데 정작 진 의원의 비난에 대한 정면 반박은 3기 영진위 사무국장으로 일한 뒤 현재 창조산업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김혜준씨로부터 나왔다. 김 전 사무국장은 10월8일 저녁 영진위 홈페이지 게시판에 ‘강한섭 위원장과 진성호 의원의 기묘한 팀플레이에 대하여!’라는 장문의 글을 올려, 진 의원의 주장은 “영진위 사업에 대한 몰이해와 심각한 상황인식의 오류에서 비롯된 사실 왜곡이자 논리적 비약”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진 의원이 영진위로부터 전해받은 ‘영상전문투자조합 진단 평가 보고서’에는 ‘KTB 영화 다양성을 위한 투자조합’ 심사과정에 대한 자료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고 근거의 출처를 의문시하면서, “심재명 위원이 결정심사에 참여했을 시점은 해당 투자조합이 MK픽처스와 아무 연관이 없는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김혜준 전 사무국장은 “수익성 관리가 쉽지 않은 투자조합”임에도 불구하고, MK픽처스가 뒤늦게 출자 결정을 내림으로써 해당 조합 결성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이은 대표와 심재명 이사는 부부이지만 영화계에서는 각자의 명성과 전문성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독립된 인격체”라며 “두 사람이 예비심사와 결정심사에 각각 참여한 것을 문제삼을 순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22개 작품에 대해 총 46억2600만원의 개발비와 제작비 투자가 이뤄진 해당 조합으로부터 MK픽처스는 자신들이 만드는 작품 1편의 제작비로 3억원의 투자를 합당한 심의과정을 거쳐 받았을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투자조합은 업무집행조합원에 의한 책임경영제를 원칙으로 하지 진 의원의 주장대로 자본과 경영의 분리를 원칙으로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영진위 위원들이 관련 단체에 특혜 지원을 했다는 진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도 김혜준 전 사무국장은 일일이 반박했다. 그는 “강한섭 위원장이 회원으로 있는 영화평론가협회나 영화학회에는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인가”,“(4기 영진위) 여성위원 4인이 모두가 관련되어 있는 여성영화인모임에는 혹시 단체사업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가”,“박경필 위원이 회장으로 있는 영상투자조합와 관계를 맺고 있는 창투사에는 투자조합 관련 출자를 안 할 것인가”,“한국독립영화협회와 직접 관련된 위원이 지금은 없으니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얼마를 그 단체에 지원해도 전혀 문제삼지 않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진 의원의 주장은 “영진위 위원이 자신이 관계된 단체나 영화사를 위해 특혜를 줄 목적으로 맡는 자리가 아니라는 영화계의 상식”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영진위가 10월17일 국정감사에서도 6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나온 지적에 대해 크게 다르지 않은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정감사를 전후로 영진위에 대한 비판 여론 또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같은 움직임은 영진위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영진위 한 관계자는 “진 의원의 입장이 기정 사실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책임자가 해명해야 마땅한 사안이라 생각해서 내부에서 공식 해명을 위한 반박 보도자료를 추진했지만 강 위원장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한 영진위 관계자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또다시 해묵은 공황론을 꺼내는 등 강 위원장 스스로 앞장서서 위원회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위원장이 영화계 안팎의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보다 영진위 구성원들은 위원장의 일방적인 일처리로 인해 현재 위원회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어 있다는 점을 더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국정감사 기간 중 영진위의 2009년 사업계획이 사실상 공개될 것으로 보여지는 가운데 영화계 제단체들도 조만간 4기 영진위에 대해 쓴소리를 뱉을 것으로 보인다. 강 위원장이 발제자로 참석한 부산영화제 토론에 자리했던 한 영화 관계자는 “강 위원장은 취임 전후로 2기와 3기 영진위의 실책을 주장해왔다. 6일 국감은 부산 토론회부터 이어진 강 의원장의 ‘이너서클’ 발언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 해줄 자료 이상은 아니다”라면서 “강 위원장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깜짝 놀랄 만한 사업과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이전 위원회를 공격했음이 밝혀진다면 역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화계 제단체들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열렸던 토론회 당시 강 위원장의 발언과 진 의원의 ‘주장’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에서 첫 번째 국정감사를 받는 4기 영진위, 여의도에서 한숨 돌린다치더라도 곧바로 충무로 청문회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전 사무국장 김혜준 인터뷰
영화계 발전을 위해 최소한의 방어를 할 뿐이다
-4기 정책에 관해서는 조용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는데 반박문을 발표했다. =현 위원회가 내가 참여할 당시의 정책사업에 대한 비판을 하더라도 대꾸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진 의원의 보고서는 영화계 전체가 투명성 문제에 휘말리는 복잡하고도 중요한 사안이다. 가뜩이나 곧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러 설이 분분한 시점이다. 아무런 입장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또 새로운 설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반박문은 그래서 최소한의 방어이자 견제의 의미가 크다.
-이번 사안을 강 위원장과 진성호 의원의 팀플레이라고 전제했다. =강 위원장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너무 사안을 부정적으로 만들어서 영화계 전체가 좋지 않게 포장되는 것은 제어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사안을 검토하고 업무를 추진해도 임기 기간에 할 일이 많고 바쁠 텐데 왜 과거의 것이 잘못됐다는 것에 대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안이 없다면, 예전부터 제기돼온 사안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이라도 보여주어야 한다. 정작 영화계 바깥사람은 내부의 문제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 않나.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면 그걸 반겨 덥석 물게 된다.
-강 위원장은 과거 영진위의 핵심 인사들을 ‘이너서클’로 규정, 한국영화 침체기의 책임을 따져 묻는다. =지금 행해진 비판의 잣대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 정권 교체기와 오버랩되는 면이 많다. 그들이 ‘어디 어디 출신이다’라는 이유로 공격받았던 것처럼 유독 안정숙, 심재명, 김동원 셋에게 비판의 화살이 쏠린다. 유지나, 민병록 등 2기에 대한 공격이 쉽지 않은 반면 같이 활동했던 동료나 기자 출신의 3기 위원들이 비교적 만만하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영진위 인사를 보더라도 역시 자신의 말을 잘 들을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당신이 제안한 영상전문투자조합 사업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핵심 사안이다. =합리적인 비판이라면 나 역시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남을 공격함으로써, 혹은 다른 동네 사람들이 내 주위 사람들을 공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우리 동네에서 내가 가장 돋보이도록 하겠다는 지금의 방식은 횡포에 불과하다. 곧 다른 방식을 찾아서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