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황홀>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탄생과 변주를 이야기하는, 시각문화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19세기 중반 철도의 발전으로 차창에 보이던 풍경이 달라진 것에 대해 빅토르 위고가 남긴 문장 때문이었다. “밭 언저리에 핀 꽃은 이미 꽃이 아니라 색채의 반점, 아니 오히려 빨갛고 하얀 띠일 뿐입니다. (중략) 마을도 교회의 탑도 나무들도 춤을 추면서 미친 듯이 곧장 지평선으로 녹아듭니다.” 그러니까 <눈의 황홀>의 출발점은 색이나 모양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분류와 측정, 구분과 같이 두뇌 학습을 거쳐 체화된 눈의 기능인 셈이다. 1장에서 말하는 ‘쌍’의 관념은, 선악과 미추를 나누는 종교에서의 이분법을 예로 들어 우리가 쉽게 짝으로 묶는 것들의 개념적 진화를 이야기한다. 죄수나 하인에게 입히던 복장의 줄무늬가 국기에까지 사용되는 것처럼 기존 이미지에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의미가 담겨져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하는 것을 흥미롭게 여긴 저자는, 인간이 남긴 방대한 기록들을 근거로 추상개념에 가깝던 시각정보가 디자인 개념으로 발전하는 궤적을 찾아낸다. 운동에너지와 진화론, 9·11 테러 같은 이야기들이 시각정보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채근할 필요는 없다. 산만하고 박학한 글솜씨를 따르다보면 신기하게도 ‘눈’이라는 맨 처음 주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