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한 남자가 있다. 세헤라자데의 운명을 타고난 이 남자는 72살의 노작가 오거스트 브릴이며, 그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자 역시 오거스트 브릴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여러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이름을 떨친 인생이었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이혼한 딸과 남자친구를 이라크 전쟁으로 잃은 손녀딸, 그리고 자동차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어 온전치 못한 육신뿐이다. 매일 밤 죽음의 충동을 이겨내며 노작가는 자기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오늘의 주인공은 오언 브릭이라는 스물아홉살의 젊은이로, 작가에 의해 미국 내전의 한복판으로 내몰린 그는 전쟁의 주범인 한 남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 남자가 누구냐고? 오거스트 브릴이다. 결국 <어둠 속의 남자>는 한 남자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과정이며, 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쏟아지는 생각 속에서 남자가 감추어놓은 진짜 트라우마를 발견하는 데에 있다. 현실과 비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폴 오스터의 장기는 여전하지만, 작품 전반을 타고 흐르는 애상의 정서나 주인공을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는 62살이라는 오스터의 나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게 한다. 아마도 “이 괴상한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어요”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어느덧 노작가가 되어버린 폴 오스터의 미묘한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일 듯하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