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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차차차!
2001-11-14

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kr

내가 25살 꽃다운(?) 나이에 다니게 된 직장이 서울극장 기획실이란 곳이었다. 당시 그곳엔 모 실장이 계셨고, 나와 남모씨라는 디자이너가 있었다. 입사한 지 한두달 동안 내겐 별로 할 일이 주어지지 않았고, 특별히 뭘 가르쳐주지도 않아서 나는 죽어라고 그 전의 기획실장님이 남기고 간 주옥(!) 같은 영화광고를 모아둔 스크랩북만 닳도록 보았다.

대학 시절에 열독했던 <스크린>이란 잡지에 매번 등장했던 고명하신 분들이 내 책상 너머, 사장실 문을 드나드는 모습을 입 벌리며 바라보는 것이 신나는 일과 중 하나였다. 김호선 감독, 정인엽 감독, 이황림 감독, 이두용 감독 등등이 그분들이었다. 말단 여직원이었던 나는 괜히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그때 영화광고 필름을 만들고, 동판을 뜨던 ‘현대동판사’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을 드나들면서 처음으로 나와 엇비슷한 연배의 젊은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까지 서울극장 기획실에 근무했던 이준익씨는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영화광고 일을 하고 있었고, 석명홍씨는 단성사 기획실에서 디자인과 카피라이팅 일을 맡고 있었다. 신철씨는 명보극장 기획실장이었고 이원기씨는 신철씨의 졸병이었다.

그들이 누구냐고? 이준익씨는 현재 시네월드의 대표이고 <간첩 리철진>과 <공포택시>를 제작했고 <메멘토>와 <러시아워2>를 수입·배급했으며, 이번에 <달마야 놀자>를 내놓았다. 석명홍씨는 시네라인I과 시네라인II의 대표로 있으며 수많은 영화광고 제작일을 해왔고, 초유의 흥행작 <친구>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신철씨는 다 아다시피 신씨네 대표이다. 이원기씨는 원필름을 차리고, 곽지균 감독의 <청춘>을 만들었다. 그 시절, 그들과 마신 커피, 밥의 양, 그리고 그들과 몰려다닌 카페와 술집의 숫자는 내 평생 사귀었던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와 드나들던 곳보다 많을 것이다.

영화계 입문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제일 막내였던 나는 그 남자들이 나누는 잡담이나 수다도 모두 생생한 현장수업이었다. 주워 삼켜도 모자랄 산교육이었다.

그들을 포함, 나 역시 지금껏 영화계를 떠나지 않고 질기게(!) 버티며 ‘영화인’으로 살고 있다. 모두들 한두편씩 대박영화를 터뜨리기도 하고, 좋은 영화라고 칭찬받는 영화도 물론 겸연쩍어해야 할 결과도 만들어내면서.

뒤돌아보면, 그들 모두 어쩌다가 영화계에 들어왔건 구체적인 계획과 꿈을 가지고 들어왔건, ‘영화’라는 상대를 눈이 아프게 마주보며 그 정체와 실체에 대해 고민하며 씨름해왔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생산하는 자’의 성실함으로 줄기차게 달려왔다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론 앞만 보고 그저 달려오기만 하면서 만들어낸 수많은 과오와 무지와 성찰의 부족이 자꾸 부끄러워지는 요즈음, 그 시절 같이 보냈던 사람들의 성실함을 기억하며 그 부끄러움을 잠시 감추고 싶은 심정이 드는 건… 왜일까?

하여튼, 이미 대박 조짐이 보인다죠? <달마야 놀자>의 제작자 이준익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14년 전에 <씨네21>이 있었다면, 이 코너는 ‘충무로 다이어리’가 아니라 ‘충무로 차차차’쯤이 되지 않았을까? 이건 사족이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