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9월11일. 칠레의 봄은 졌다. 국민선거로 이룩한 칠레의 민주사회주의 실험은 CIA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에 짓밟혀 사라졌다. ‘대통령 동지’ 아옌데는 기관총을 들고 대통령궁을 사수하다 총에 맞아 죽음으로써 칠레 혁명의 아이콘이 됐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또 한명의 아이콘이 있다. 노래를 통한 사회의 변혁을 주창했던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의 기수, 칠레 민중가요의 아버지인 빅토르 하라다. <씨네21> 독자라면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에 등장한 빅토르 하라의 재연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잡아들인 시민들로 가득한 스타디움. 한 젊은이가 일어나서 민중가요 <벤세레모스>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그는 곧 끌려나가 기타 치고 장단 맞추던 손과 팔이 뭉개진 채 총살당했다. 저자 조안 하라는 남편의 시체를 뒤로하고 칠레를 탈출한 뒤 1983년에 <빅토르 하라-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를 썼다. 1983년에 첫 출간된 이 책은 아름다운 연애담이자 풍요로운 자서전인 동시에 민주적 사회주의 이상에 대한 쓰린 비망록이다. 한국 출간이 좀 늦었다고? 알다시피 지금이 최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