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시작. 한 남자가 메마른 눈빛으로 공터를 응시하고 있다. “가슴에 구멍이 났다”고 말하는 이 남자에게 구원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소설은 또 한명의 남자를 조명한다. 경찰청 수뇌부에서도 최고 엘리트로 평가받는 사에키 경시는 유아 실종사건을 맡아 고군분투한다. <통곡>이 유괴 살인사건에 대한 소설이란 점을 상기하면 전자는 유력한 살인범, 후자는 그를 뒤쫓는 추적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이 두 인물의 일상을 기반으로 한 발자국씩 앞으로 전진한다. 용의자가 신흥 종교에 빠져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하고 추적자가 경찰 간부인 아내와 별거하며 르포라이터 출신 애인과 사랑을 나눌 때까지, 평행선을 그리던 두 인물의 삶은 만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이 대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통곡>은 소설 내내 억눌러왔던 감정을 한꺼번에 분출시키는데, 그 파장이 꽤 크다. 이 소설은 트루먼 카포티의 문체로 서술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물 같다. 다시 말해 필체는 논픽션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건조하고 인물의 내면 심리는 치밀하게 묘사된다. 여느 추리물처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는 없으나, 삶에 대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건조한 문장만 견뎌낸다면 그만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