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영화 <핸섬슈츠> 서울 바이어 시사 안내’라는 메일 제목을 보면서 잘못 배달된 게 아닌지 의심했던 것은 ‘바이어 시사’라는 생소한 낱말 때문이었다. 기자 시사회, 일반 시사회, VIP 시사회는 들어봤어도 바이어 시사회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덧붙여 생각하더라도 만약 바이어 시사회라는 행사가 있다면, 그건 서울의 한 극장이 아니라 영화제나 영화마켓에서 열려야 할 것 같았다. 바이어, 그러니까 영화를 구매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시사회의 정체가 궁금해진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메일의 내용은 9월26일 CGV압구정에서 영화수입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핸섬슈츠>라는 일본영화의 시사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이 메일을 보낸 도키엔터테인먼트의 도재훈 대표는 “한국의 영화 바이어들을 상대로 한 일본영화 시사회는 그동안 꾸준히 열려왔다”면서 “영화수입사 대표나 구매 담당자에게만 연락을 하다보니 언론이나 일반인은 잘 모르는 행사”라고 설명한다. 일본영화 바이어 시사는 4년 전 세일즈 에이전시인 도키엔터테인먼트가 쇼치쿠의 영화를 중개하면서 본격화됐고, 일부 대형 일본영화사는 직접 시사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도재훈 사장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규모가 큰 한국영화가 일본에서 바이어 시사를 열기도 한다”고 귀띔한다. 이처럼 비밀(?)리에 열려왔던 행사를 기자들에게까지 알린 것은 이 영화의 제작사인 일본 아스믹 에이스가 요청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11월1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아직 일본 기자를 상대로 한 시사회도 열지 않았지만, 한국 언론의 반응을 궁금히 여긴 아스믹 에이스는 도키엔터테인먼트에 영화 전문지 기자들을 불러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칸이나 AFM 같은 영화마켓이 존재하는데도 바이어 시사회가 열리는 이유에 대해 도재훈 사장은 “마켓에서는 아무래도 할리우드 대작이 주목을 끌게 마련이다. 또 영화가 완성된 직후에 곧바로 보여줘야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데 마켓은 1년에 몇 차례밖에 안 열리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택한다”고 말한다. 한국과 일본의 지리적, 정서적 거리가 가깝다는 점 또한 이러한 바이어 시사회가 열릴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2~3개월마다 한번꼴로 이런 시사가 개최된다는 사실은 일본영화계가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여기면서 지속적으로 시장개척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보여준다. 몇몇 한류 스타들만이 꾸준히 인기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와는 대조적인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 한류의 거품이 꺼진 게 일본 관객의 변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