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큐멘터리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동남아시아의 작품은 여전히 사회변화의 흐름과 사람들의 척박한 생활을 관찰한다. 또한 동물의 생활부터 비에 대한 감상을 담는 등 다양한 주제로 가득한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의 상영작들도 주목할 만하다.
아이들이 화장터에 간 까닭
화장터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Pyre 감독 라제쉬 잘라 | 인도 | 2008년 | 74분 | 컬러 |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경쟁
제3세계의 아이들은 다큐멘터리의 보고가 됐다. 끼니를 잇고자 일터로 나선 이 아이들이 온갖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노동을 하는 모습은 굳이 많은 설명과 연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화장터의 아이들> 또한 감독의 시선보다 소재가 가진 아픔이 먼저 다가오는 다큐멘터리다. 인도 바라나시의 화장터에 사는 아이들에게 남의 죽음은 자신의 밥줄이다. 영화는 시체들의 수의를 벗겨 장의사에게 되팔면서 생계를 잇는 7명의 아이들과 대화한다. 5살 때부터 일을 시작해 15살까지 약 1천구가 넘는 시체의 옷을 벗긴 아이도 있고, 다른 아이가 차지한 수의를 때리고 협박해 뺏는 아이도 있다. 왜 아이들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가족들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어요. 엄마도 처음에는 이 일을 반대했지만, 내가 돈을 갖다주니까 아무 말이 없었어요.” 화장터에 살면서 아이들이 잃은 건 아이다움만이 아니다. 일이 너무나 고된 아이들은 매일 20개가 넘는 담배를 씹고, 시체를 태우는 연기는 아이들의 등과 팔에 수포를 일으킨다. 생계를 위해 남성들의 눈요깃 댄서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인도 여자들의 이야기인 <댄서의 꿈>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다.
어른 뺨치는 고교 학생회장 선거전
선거주자 FrontRunners 감독 캐롤라인 서 | 미국 | 2008년 | 80분 | 컬러 |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선거주자>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학생회장 선거전을 뒤쫓는다. 상위 3%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이 학교의 선거에는 육성회장 엄마의 치맛바람이 휩쓸 구석이 없다. 어른들의 선거전을 그대로 모사하는 아이들은 오로지 치밀한 전략과 전술로 선거에 임한다. 상대 후보를 비방은 기본. 유권자인 학생들 개개인의 인종과 성별을 고려해 연설을 준비하는가 하면, 그들의 눈을 보고 악수하는 법도 알고 있다. 심지어 어떤 헤어스타일이 전략적으로 효과가 있는지까지 파악하는 애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선거전을 스케치하는 한편, 학생들과 선생들이 선거의 향방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는지 담아낸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이 선거를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모의과정쯤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니다. 카메라는 철저히 이들의 선거를 대통령 선거를 다루듯 관찰하는 한편, 이들이 학생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선거와 다를 수밖에 없는 점도 짚어낸다. 학생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내준 숙제도 꼬박꼬박 해야 하고, 대학 입학을 위해 SAT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지금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본다면 ‘선거 그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는 다큐멘터리다.
수십, 수천, 수만명이 주목하는 단 한 사람
지휘자들 The Conductors 감독 안디바티아르 유숩 | 인도네시아 | 2007년 |74분 |컬러 |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경쟁
한 사람의 손이 몇십, 몇천, 몇 만명의 사람들을 움직인다. 누구를 왜, 어떻게 움직이든 그들은 ‘지휘자’로 불린다. <지휘자들>은 수많은 지휘자들 중에서도 몇 십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내는 음악의 선율을 관장하는 지휘자와, 5천명의 합창단원이 내는 목소리를 장악하는 지휘자, 그리고 5만명이 넘는 프로축구단 서포터즈의 응원을 이끄는 응원단장의 모습을 교차시킨다. 영화는 각각의 지휘자들이 일을 하게 된 동기부터 지휘방식과 철학,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균형있게 채워놓았다. 무엇보다 <지휘자들>은 대규모 군중의 일사분란한 동작과 그들이 내는 소리의 스펙터클이 가진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합창단원들의 목소리, 응원단의 함성소리를 편집해 하나의 음악으로 구성해놓은 첫 장면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지휘자와 지휘받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인도네시아 사회의 변화된 분위기를 감지하는 부분 또한 인상적인 대목이다.
판다야 넌 너무 귀여워
팬더 다이어리 Panda Diary 감독 모리 다다시 |일본, 중국| 2008년 |99분 |컬러|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팬더 다이어리>는 카메라가 비추는 피사체만으로도 ‘완전 호감’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영화는 일본으로 건너가 매력을 과시하고 있는 두 마리의 판다와 중국의 보호시설에서 자라고 번식하는 판다들의 이야기를 일인칭 내레이션으로 관찰한다. 4살배기 쌍둥이 형제 판다인 류힌과 슈힌은 외교사절 역할을 마무리하고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들이 돌아올 보호시설에는 수많은 어른 판다와 아기 판다들이 살고 있다. <팬더 다이어리>를 채우는 대부분의 장면은 판다들이 자기들끼리 놀면서 서로 치대고, 엎어지고, 구르는 ‘애교 작렬’의 모습들이다. 또 한축은 인간에 의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양육하는 어미 판다의 이야기다. 특히 상상임신을 겪는 암컷 판다의 착란증세는 앙증맞은 분위기로 가득한 이 영화에서 가장 쓰라린 부분이다. 여타의 동물다큐멘터리와는 달리 <팬더 다이어리>는 특정 동물의 생로병사를 열거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모습들을 꾸밈없이 보여주려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특히 촬영 뒤 작가가 짜낸 스토리라인에 맞춰 드라마적인 편집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 “이름을 지어주기 힘들 정도로 판다가 많아지길 바란다”는 내용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판다를 아껴주었으면 하는 의도로 제작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