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개연성 지수 ★★☆ 캐릭터 호감 지수 ★★ 스페인 애니메이션 정체성 지수 ☆
슬프지만 아름다운 동화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꿔놓는 것은 디즈니의 장기요, 꿈과 희망이 가득한 동화 속 세상을 풍자와 비아냥으로 버무리는 것은 드림웍스의 특기다. 제목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세르반테스의 고전 <돈키호테>에 뿌리를 둔 <동키호테>는 두 스튜디오의 장기와 특기를 빌려와 만들어낸 스페인산 3D애니메이션이다. <돈키호테>의 내용을 요약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영화는, 말이 되고 싶은 당나귀 동키(정종철)의 안내에 따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출발점은 돈키호테(박준형)가 첫 모험에서 돌아온 뒤다. 라 만차 마을 산초(오정태)네 집에 애마 로시난테(장승길)와 함께 얹혀사는 신세가 된 키호테는 꿈의 여인 둘시네아에 대한 환상을 간직한 채 기사도 문학과 검술에 빠져 지낸다. 어느 날 시장이 키호테와 산초를 부르더니 놀랍게도 바르셀로나에서 둘시네아를 놓고 벌어지는 결투 소식을 알려준다. 키호테와 산초는 로시난테와 동키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출발하고, 일행은 둘시네아를 눈앞에서 놓치고 사자의 위협을 받는 성주의 아내를 구하는 등 모험을 겪은 뒤에야 목적지에 도착해 결투에 참가한다.
영화는 결말을 포함해 4개장으로 구성된다. 도전장, 거짓 공작, 대결투, 결말 등 이야기의 진행을 알려주는 장의 구분은 친절하지만 1시간30분이 채 되지 않은 영화의 흐름을 끊는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와 익살스러운 동물의 등장으로 아동용이라고 넘겨짚기 십상인데, 사실 영화 속 코미디나 풍자의 수준은 성인 관객에 걸맞다. 볼품없는 성을 가리기 위해 판자에 화려한 성 그림을 그려 성의 앞면에 붙여 놓는다든지, 키호테가 구애하는 장소에만 비가 내린다든지, 성주 아내의 풍만한 가슴을 클로즈업하는 등의 장면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 눈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애니메이션의 한계는 그 수준의 얄팍함이다. 어떤 레퍼런스도 깊이있게 다루지 않고 언급하고 인용하는 데 그쳐 인간의 의지를 상징했던 세르반테스의 창조물을 매분매초 소비할 뿐이다. 오리지널에 대한 고민없는 패러디의 생명이 오래가지 않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될 수도 있겠다. 100% 더빙판 개봉을 선택함으로써 어른관객을 포기한, 교훈도 재미도 미적지근한 애니메이션이 어린이 관객을 끌어당길지는 미지수다.
tip/ 메가폰을 잡은 호세 포조는 2003년 국내 개봉했던 스페인 애니메이션 <엘시드: 전설의 영웅>을 연출한 감독이다. 귀족의 아들 로드리고와 아름다운 여인 히메나의 사랑과 모험을 그린 <엘시드: 전설의 영웅>는 2003년 스페인의 고야 어워드에서 베스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