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버라이어티 게스트 문소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개봉 전후에 문소리가 영화 홍보를 위해 몇몇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간 적 있었어요. 전 그것들을 다 봤는데, 그 때 재담꾼 문소리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실 장점이 더 많아요. 버라이어티 고수들의 자연스러움은 조금 부족하지만 표현력이 풍부하고 타이밍이 정확하며 농담 소스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문제는 언제 끝내야 할지 모른다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 ‘무릎팍도사’에서 문소리는 남편이 키스해줄 줄 알고 눈감고 기다렸더니 “왁!”하고 소리를 쳤다는 농담을 했죠. 여기까지는 완벽해요. 근데 문소리는 농담의 펀치라인이 나온 뒤에도 계속 말을 이어요. 뒷마무리를 하고 두 사람 다 잠자리에 넣고 재워야 이야기가 끝나죠. 이건 굉장히 나쁜 버릇이에요. 펀치라인 뒤는 될 수 있는 한 짧아야 합니다! 이건 농담의 황금 규칙이에요.
문소리의 이런 농담들을 밥 로스의 몇몇 그림을 연상시킵니다. 기억나세요? 작고한 <그림을 그립시다>의 호스트요. 전 그의 몇몇 그림들이 아주 좋았죠.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 찬 터너풍의 풍경화였어요. 문제는 로스가 그 작품을 완성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는 늘 거기에 선과 디테일을 더해서 이발소 그림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보면서 늘 생각했죠. 왜 저 아저씨는 저기서 멈추지 않는 거야?
모든 예술이 그런 것 같아요. 작품을 멈추어야 하는 때가 있고 그걸 결정하는 시기에 따라 완성도와 스타일이 결정되는 것이죠. 물론 사람마다 멈추어야 할 때가 달라요. 고야와 베르메르가 같은 지점에서 멈추는 건 아니죠.
시간이 남아 다시 배우 문소리 이야기로 넘어간다면… 문소리는 100퍼센트 완주를 해야 하는 스타일입니다. 연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동작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를 사전 계산에 따라 의식적으로 통제해요. 그것들이 표면에 드러나 있어서 감지하기도 쉽고요. 아직까지 문소리의 최대 걸작으로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뽑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오아시스>는 연기가 아닌 것이 개입될 수 없는 영화였지요. 적어도 공주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배우가 되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위치는 우리나라 관객이 ‘명연기’로 인식하는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죠. 그리고 이 지점은 프리마돈나의 영역과도 많이 겹쳐요. 보통 관객은 문소리의 순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이 배우의 연기 스타일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위악적인 코미디 연기는 <효자동 이발사>의 상대적으로 사실적 연기보다 훨씬 문소리라는 배우의 핵심에 가까워요. 그 영화를 좋아하는 문소리 팬은 한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하는 거죠. 배우 문소리에겐 자신의 에너지와 테크닉을 100퍼센트 쏟아부을 수 있는 역이 필요해요. 멈추어야 하는 지점이 멀리 있을수록 배우도 좋고 작품도 좋아집니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 영화판이 문소리에게 그런 역을 얼마나 제공해줄 수 있을까요? 문제는 그런 역이 있어도 보통 배우의 ‘평범하고 순한’ 이미지에 걸려버린다는 것입니다.
요새 문소리는 <내 인생의 황금기>라는 MBC 주말드라마를 찍고 있습니다. 아마 이 칼럼이 나올 때는 벌써 방영되고 있겠죠. 문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해보면 맺고 끊는 게 분명하고 외형적이어야 하는 드라마 연기는 오히려 이 배우에게 더 잘 맞을 수도 있어요. 적어도 연기 스타일을 바꾸어야 할 이유는 없단 말입니다. 오히려 교정이 필요한 건 배우가 아니라 지금까지 그 배우를 익숙한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던 시청자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