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물고빠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논다. 최근에는 ‘넌 모순적인 매혹덩어리야’에서 ‘넌 햇님 난 달님’으로까지 표현이 승화해 거의 오르가슴의 경지에 이르러 꺄악 소리를 질렀다. 일명 에로 놀이로, 자급자족 경제의 일환이다. 친구는 몇푼 안 되는 중국 펀드가 바닥을 쳤고 난 맡겨논 돈 받는듯 손벌리는 각종 고지서들을 내 몸의 착한 지방처럼 끼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따지고 보면 괜찮은 상태인데, 덕분에 경제활동의 긴장마저 스르르 풀리면서 소처럼 일하는 자신이 서글퍼지고 육아의 긴 터널이 암담해지곤 한다.
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필요를 넘어 욕망을 위해 존재한다. 점점 덩치를 키워 끝을 알 수 없게 만든다. 미국발 금융쇼크의 원인이 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위기란, 무리를 해서 주택융자를 받은 이들이 제때 돈을 갚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돌려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주택융자지분을 투자은행들이 사들여 이를 각종 이름의 증권으로 만들어 판다. 그 증권을 토대로 또 새로운 파생상품도 만든다. 투자자든 투자은행이든 잘 물리면 대박 치지만, 잘못 물리면 빚독촉도 못해본 채 쫄딱 망한다. 금융공학적으로 가상의 이윤을 상품화한만큼 누가 때맞춰 치고 빠지느냐에 성패가 갈린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결국 이런 고수익 고위험의 다단계 피라미드에 너도나도 한발씩 걸치면서 돈 놓고 돈 먹다가 벌어진 것이다. 어느 나라보다 대미 종속이 큰 우리나라에서는 실질적이든 심리적이든 타격이 크다. 당장 중소기업은 직격탄을 맞았고 대기업들도 허리띠를 졸라맨다. 은행들은 쉽게 돈을 안 빌려주고 투자는 얼어붙고 수출은 위협받고 소비는 위축된다는 걱정이 쏟아져 나온다. 경기침체의 일반 방정식이다. 엠비에이 경영학도의 아메리칸 드림이던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마저 주가 폭락으로 휘청댄다는 얘기엔 아무 상관없는 이들마저 떤다. ‘성공에의 롤모델’이 사라져서다. 설마 이 와중에 이들을 본뜬 상업은행(산업은행??) 민영화를 계속 밀어붙이지는 않겠지?
온 국민이 황우석 줄기세포 읊듯 미국의 투자은행이름과 파생금융상품을 꿸 필요는 없다. 고용없는 성장이 위험하듯 생산없는 이익도 신기루라는 각성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프랑스의 어떤 미래학자는 시장 주도의 신자유주의가 극한까지 기승을 부리며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다가 2050년께가 되면 사람들이 이타적으로 바뀐다고 했다. 남이 아프거나 교육을 못 받거나 가난하면 내가 그만큼 불편하므로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지극히 당연한 경제활동이라는 것이다. 굳이 전쟁 거치지 않고 그냥 그러면 안 될까. 2050년이면 내가 몇살이야? 친구야 부디 오래 살아라.